[월요인터뷰] "20년전만해도 한국 기업환경 '끔찍'…이젠 亞 최고라 할수 있죠"
1993년 가을 어느 날,벽안의 한 외국 기업인이 퇴근길에 강변도로에서 석양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국인 운전기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한국 생활이 길어질 것 같소.혹시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르니 외국인을 위한 공동 묘지가 있는지 찾아봐 주세요. " 며칠 뒤 운전기사는 미안한 표정으로 '열심히 찾아봤는데 그런 건 없네요"라고 하자 그는 "농담이었는데(Just kidding)…"하고 웃어 넘겼다. 물론 농담이 섞인 말이었지만,그의 머리 속에 한국과의 인연은 이미 그때 '운명'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주한 외국 기업인 중 가장 대표적인 '한국통'으로 꼽히는 윌리엄 오벌린 보잉코리아 사장(67)이 한국을 떠난다. 미국 공군 전투기 비행사로 예편,보잉사 입사 직후 한국에 온 그는 이땅에서 23년을 보냈다. 그동안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을 두 차례나 지내 '미스터 암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 사회가 180도 달라졌다고 하는 그는 우리 사회 대변혁기의 가장 객관적인 증인 중 한 사람이다. 내달부터 하와이에서 은퇴 생활을 시작할 그를 지난 9일 서울 종로2가 종로타워 18층 보잉코리아 사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떠셨나요.

"깜짝 놀랐습니다. 온통 총 천연색이더라고요. 한국에 오기 전에 봤던 사진은 흑백뿐이었거든요. 6 · 25전쟁에 관한 사진들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서울 시내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한국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나 봅니다.

"한국 근무가 결정되고 나서 책 한 권을 구해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할 때 유의할 점 10가지'라는 책이었는데 서면상의 계약은 믿지 말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설마했지요. 그런데 1985년 막상 서울에 오니 실제로 그런 일들이 생기더군요. 서면뿐인 약속 때문에 적잖이 불이익을 당했었습니다. "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죠?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 대사가 1992년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제가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에 대해 브리핑을 했습니다. 그때 '끔찍하다(horrible)'고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2001년 허바드가 대사로 부임했을 때 이번엔 '한국은 아시아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라고 브리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허바드 대사가 '10년 전엔 최악이라고 하지 않았었나요'라며 웃더군요. "

◆무엇이 한국을 바꿔놨다고 생각하십니까.

"1997년 외환위기가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한국 사람들한텐 큰 시련이었겠지만 덕분에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기업들은 강제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혁신을 통해 변하기 시작했고,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 경제를 본 궤도에 올려놨습니다. 이때가 한국이 지금의 위치로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모멘텀의 시기였습니다. "

◆직원들과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네요.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에요. 인수 인계 때문에 일거리가 많았습니다. 야근을 밥먹 듯이 할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보니 내가 퇴근할 때까지 직원들 아무도 퇴근을 하지 않는 겁니다. 속도 모르고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는구나' 생각했죠.한 달쯤 지났을까,임원 한 분이 제게 귀띔해주더군요. '사장님이 퇴근하셔야 저희들도 갈 수 있습니다'라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미안한 일이었어요. "

◆그런 관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얼마 되지 않아 그것이 한국 기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직원들이 자신의 회사에 대해 헌신하고 리더에게 존중과 신뢰를 보내는 것은 아주 큰 자산이거든요. 한국인에게 회사란 마치 가족의 연장선 같았습니다. 계량화하기도 어렵고,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늘날의 한국을 있게 한 소프트파워인 셈이지요. "

◆한국 기업을 지켜 본 느낌은 뭔가요.

"AMCHAM 회장 시절에 한국의 경영자들을 보면서 여러 차례 놀랐습니다. 정말 좋은 자질과 훌륭한 경영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삼성의 인재 교육 시스템을 보기 위해 삼성인력개발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연수 프로그램을 견학했는데 당시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단합대회를 보고 감탄했지요. 회사에 대한 헌신,단결,협력 등 한국 특유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미국 기업에서 이런 식의 트레이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오너 경영에 대한 긍정론이 꽤 많아졌습니다.

"저는 오너 경영이라는 말 대신에 '스트롱 리더십'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경영자가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리더십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발휘하느냐가 위기 극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한국 기업들이 미국 등 외국 기업들을 벤치마킹하곤 했는데 사실 한국 기업 중에서도 우수한 경영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삼성,포스코는 글로벌 경영 스탠더드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해 훌륭하게 한국식 경영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대기업들은 더 이상 외국 기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성장했으니 한국은 이제 자신감을 가져도 됩니다. "

◆어떤 분들이 기억에 남습니까?

"구평회씨(E1 명예회장)를 잊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신사이고 참된 비전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시작이 아무리 미천해도 못 이룰 것은 없다는 신념과 성공을 위해서는 10년 후를 내다 볼 수 있는 명확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그 분에게서 배웠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분입니다. 어떤 자리였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8~9년 전에 함께한 만찬 자리였어요. 우연히 반 총장 옆에 앉게 되었지요. 당시 식사 자리에서 모든 대화가 한국어로 진행되다 보니까 저는 약간 소외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랬더니 반 총장께서 제가 대화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통역을 해주며 많이 도와주셨지요. "

◆쓴소리도 한마디 해주시지요.

"글쎄요. 어느 사회이건 개선돼야 할 부분은 있게 마련입니다. 이 점을 전제로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정이 많고 지나치게 사교적이에요. 음주 문화가 매우 정겹고,때론 커뮤니케이션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주긴 합니다만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는 회사나 개인 모두에게 해롭습니다. 아무리 비즈니스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문화는 솔직히 말해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한국의 항공제조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역량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보잉을 비롯 EADS,에어버스 등 글로벌 우주항공 리더들의 훌륭한 파트너로 자리잡았습니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한 관건은 한국의 우주항공 산업이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지를 계획하고 정하는 일입니다. 부품,구조물 공급자로선 최고입니다. 이를 넘어 상용기,군용기 시스템 제조 국가를 지향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아마 상당히 어려운 작업일 겁니다. 국내외 수요가 충분히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AMCHAM 대표를 두 번이나 역임하셨습니다.

"한 · 미 간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데 한몫을 담당했던 것 자체가 영광스럽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할 수 있도록 미국 의회에서 증언한 일도 있었지요. "

◆은퇴 후엔 어디를 갈 예정이신가요?

"하와이로 갈 겁니다. 집도 구해놨고요. 제 딸은 먼저 가서 오바마 대통령이 다녔던 푸나후 스쿨에 다니고 있습니다. "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윌리엄 오벌린 사장은

윌리엄 오벌린 보잉코리아 사장은 2003~2004년,2007~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회장을 지냈다. 한 · 미 재계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양국 간 비즈니스 협력을 위해 힘썼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엔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1985년 미 공군 조종사로 예편한 직후 보잉에 입사했다. 곧바로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일한 2년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줄곧 근무했다. 회사 내에선 '오 사장님' 혹은 '대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그만큼 강한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얘기다. 근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인터뷰 중 이따금 미국식 농담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딸에 대해 얘기할 때면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식당은 삼청동 수제비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