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아이스크림 라면 등에 '오픈 프라이스'(판매가격 표시) 제도가 시행된 지 열흘이 지났지만 POS(판매시점정보관리)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동네 슈퍼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이달부터 가공식품에 대해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애고 각 판매점에서 직접 값을 매기도록 했지만,'권장가격' 시절에나 가능했던 '50% 할인' 문구를 내건 사례도 많았다.

11일 서울 합정동의 한 슈퍼마켓.이 가게 문 앞에는 여전히 '아이스크림 50% 할인'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권장가격이 없어졌으니 '할인'이란 문구를 사용해선 안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슈퍼 주인 양모씨는 "오픈프라이스와 상관없이 시행 전 가격과 똑같이 판매하고 있다"며 "구청에서 트집을 잡으면 플래카드를 떼버리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할인 문구를 붙여놓지는 않았지만 손님이 올 때마다 구두로 가격 할인을 홍보하는 곳도 있었다. 서울 성산동의 한 슈퍼 주인 김모씨는 "오픈프라이스가 시행됐지만 예전부터 진행해오던 아이스크림 할인행사를 갑자기 중단할 수는 없다"며 "빙과류는 계속 30% 할인하는 방식으로 판매할 것"이라고 전했다. 성산동의 다른 슈퍼에선 종전 권장가격으로는 비비빅 700원,더위사냥 1000원,붕어싸만코 1500원,메로나 700원,바밤바 1000원 등이었지만,'아이스크림은 모두 500원'에 팔고 있었다. 슈퍼 주인은 "아이스크림은 대표적인 미끼상품이라 개당 마진이 30원을 넘지 않는데 가격표시가 없는 제품을 팔 때마다 일일이 체크하기가 어려워 500원으로 통일해서 팔아버린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당주동의 한 슈퍼 주인 김모씨는 11일 "가격이 표시되지 않으니 얼마에서 얼마로 올랐는지도 헷갈릴 지경"이라며 "가격표시는 없어지고 포장지 모양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가격만 오르는 바람에 종전 가격으로 팔아 손해를 본 경우도 있다"고 푸념했다.

'비표'도 차츰 사라지고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 3,4월 빙과류와 과자 제품에 권장가격 표시를 없애면서 제품포장에 'L-20'(2000원),'L-700'(700원) 등을 표기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1500여개에 달하는 제과 · 빙과 제품의 가격을 영업사원들이 외우기 힘들어 영업 편의상 표시했던 것"이라며 "권장가격을 사실상 유지하려 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빙과는 5월,제과는 이달 초부터 비표를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오픈프라이스 제도를 관장하는 지식경제부는 이번 주부터 전국 슈퍼마켓을 대상으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염동관 지경부 유통물류과장은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슈퍼를 규모 · 지역별로 조사할 계획"이라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완대책 등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세한 슈퍼들에 필요한 오픈 프라이스 관련 실무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경배 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제조사들이 포장지만 바꿔 가격을 올리면 슈퍼마켓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고 소비자들이 동네 슈퍼에서 이렇게 인상된 가공식품 가격을 아는 품목은 10%도 채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철수/심성미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