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 포스코가 글로벌 본드(해외채권) 를 포함,최대 2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부족한 탓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유 자금이 모자라서다.

포스코는 통상 4조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 보유를 유지하고 있다. 포항과 광양제철소 운영에 소요되는 두 달치 매출 원가로,내부적 기준에 따른 적정 보유량이기도 하다. 포스코의 현재 현금성 자산은 6조3000억원 정도.대우인터내셔널 인수 대금으로 3조3000억원을 쓰고 나면 조만간 현금성 자산은 절반 이하인 3조원 정도로 줄어든다. 다른 기업 입장에선 충분한 여유 자금일지 몰라도 포스코 입장에선 내부 기준치를 밑도는 금액이다.

앞으로 들어갈 돈도 많다.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후 미얀마 가스전 개발을 위해 새로 투입해야 하는 자금만 약 2조원.인도와 인도네시아 제철소 건설,해외 광산 인수,국내 설비투자 등에 들여야 할 자금도 만만치 않다. 3조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만으론 충분치 않은 이유다.

회사 관계자는 "향후 해외 투자자금을 여유롭게 조달하면서 안정적인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 외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을 추진하게 됐다"며 "환율과 국내 · 외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국내보다 해외에서 발행하는 채권 물량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공기업을 포함한 국내 대기업들은 환율과 해외 금융시장 침체 등으로 글로벌 본드 발행을 자제해 왔다. 수출입은행,하나은행 등 금융권의 소규모 해외 자금 조달만 간간이 진행돼온 정도다. 금리가 저점을 지나고 있는 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움츠러들었던 해외 금융시장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포스코가 글로벌 본드 발행에 성공하면 국내 대기업들의 해외 채권 발행도 다시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동유럽 사태가 터졌을 당시 조달금리 상승을 우려해 해외채권 발행 및 주식 상장 시기를 연기하거나 관망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요즘엔 여건이 개선되는 추세"라며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이나 상장 등을 통해 국내 · 외 자금 조달에 나설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미 글로벌 자금 조달에 나선 기업들도 있다. STX그룹은 2007년 인수한 STX유럽(옛 아커야즈)을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하기로 했다. 수익성이 좋은 해양플랜트 · 특수선 사업 부문을 따로 떼어내 오는 10월께 증시에 상장,최대 6000억~7000억원가량의 자금을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SK텔레콤 현대중공업 등도 국내 · 외에서 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