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역설적으로 느림과 여유가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속도의 경제와 느림의 미학이 공존하는 상태다. 슬로 푸드,슬로 패션,슬로 시티 등 '느림'을 강조하는 트렌드가 소비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슬로 트렌드의 부상은 기업들의 기존 경영관행을 바꾸도록 하는 도전이다.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해운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사는 '시간의 슬로 비즈니스'를 실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컨테이너선 항해 속도를 시속 24노트(44~46㎞)에서 12노트(22㎞)로 낮췄다. 천천히 가면 이산화탄소와 연료비를 각각 30%씩 아껴서 이익도 남기고 환경도 살릴 수 있다고 고객들을 설득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에서 여유를 찾는 '공간의 슬로 비즈니스'도 있다.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소금섬' 증도는 갯벌 염전 습지가 공존하는 곳이다. 2007년 아시아 최초의 슬로 시티로 지정됐다. 섬 주민들은 느린 템포의 삶을 체험하러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섬 곳곳에 400여대의 자전거를 비치, 무료 친환경 교통시스템을 만들었다. 주민들 스스로 '담배 연기 없는 건강의 섬'을 선언,금연조례를 제정하고 자율 금연거리도 지정했다. 천천히 여행하기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 덕에 증도 방문객은 2007년 10만7000명에서 작년에는 37만3000명으로 훌쩍 늘었다.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슬로 비즈니스도 인기다. 미국 오리건주의 중소 지방은행인 움프쿠아(Umpqua) 은행은 빠르고 첨단을 강조하는 은행의 이미지를 편안함과 여유로 바꿔 고객을 끌었다. 호텔급 안내데스크를 갖추고 고급 커피숍을 들였다. 영화를 상영하고 요가와 뜨개질 강습 등 취미강좌도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은행에 잘 가지 않는 젊은이들과 가정주부들이 움프쿠아 은행을 찾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부분 은행이 지점을 줄였지만 움프쿠아 은행은 2006년 127개였던 지점 수를 작년 151개로 확대했다. 또 같은 지역 경쟁사 지점보다 평균 3배가량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몸의 여유를 추구하는 슬로 비즈니스는 건강한 신체를 추구한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씨가 만든 '기적의 사과'가 좋은 예다. 기무라씨는 농약과 비료를 완전히 배제한 100% 자연 농법을 추구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10년 만에 농약 · 비료 없이 훌륭한 품질의 사과가 많이 열리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과는 2년이나 보관해도 썩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주문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3분 만에 품절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부분 기업은 스피드 경영을 추구한다.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해 고객이 만족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남보다 빨리 제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제품의 품질 저하와 낮은 수준의 혁신 반복 등 부작용도 낳게 마련이다. 슬로 경영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계발하고 만족도를 높여 기업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다.

도코 도시오 전 게이단렌(經團聯) 회장이 "경영자는 최소한 하루 30분 이상 휴식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느림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새 사업을 기획하는 경영자라면 '더 느리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다시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슬로~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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