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경쟁력이다. 예전에는 기업경쟁력 하면 제품의 성능이나 가격에 관심을 뒀지만,최근에는 디자인,서비스,그리고 고객이 느끼는 감성적인 가치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영이 핵심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수년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추진해온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전략'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쟁력을 찾게 되면서 창조경영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창조경영이란 무엇일까? 창조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인데 이 개념이 경영과 만나서 무슨 의미를 갖게 된 것일까? 창조경영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필자가 접한 가장 쉬운 설명은 '설탕을 빨리 효과적으로 물에 녹이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우선 창조경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설탕물을 만드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조직 리더의 창조적 리더십'에 비유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물과 설탕을 담을 수 있는 컵에 해당하는 '적절한 조직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고객이 느끼는 가치,아이디어,그리고 아이템에 해당하는 설탕을 효과적으로 빨리 녹이기 위해서는 물의 온도를 높이는 것에 비유되는 '창조 경영의 환경과 창의적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

여기에 설탕을 물에 녹도록 저어 주는 수저와 같은 도구가 있다면 설탕물을 빨리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이 수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창의적 생각의 도구'가 트리즈(TRIZ)다.

트리즈는 창의적 문제해결(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약자로 옛 소련에서 개발된 것이다. 창시자인 알트 실러와 그 동료들이 전 세계 200만건의 특허 가운데 우수한 특허 4만건을 추출해 그 공통점을 찾아 정리한 문제해결 방법론이다. 트리즈에서 정리된 우수한 특허들의 공통점은 문제마다 유형이 있고,그 문제의 근본 모순을 해소했을 때 해결됐다는 점이었다. 변증법의 정(正) 반(反)이나 세상의 모든 일에 있는 장점과 단점,이런 상반되는 모순을 합(合)의 형태로 해결하는 철학과 이론,그리고 그 과정이 트리즈 기저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트리즈는 1990년대 중반 LG전자 생산기술연구원과 삼성종합기술원에서 도입됐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손욱 원장의 주도로 러시아 트리즈 전문가들을 초청해 직접 배우고 실제 기술 문제에 적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트리즈 보급이 10년 이상 되면서 이제는 대기업 연구소의 기술 혁신,특허 개발 뿐만 아니라 중소 기업,대학의 창의적 설계 교육,경영 분야,공공 부문의 민원 해결,사회 갈등 해소의 한 방법으로까지 트리즈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표>는 트리즈에 관한 방법과 대표적인 프로세스,그리고 경영 등 다른 방법들과의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고전 트리즈는 기술적인 분야에서 주로 문제 해결,아이디어 창출 부문에 집중돼 있으나 최근의 모던 트리즈는 다른 분야의 문제 분석 방법들과 6시그마와 같은 품질 개선,경영 방법들과 경쟁,융합되면서 창의적인 문제 해결 프로세스로 발전해 오고 있다. 특히 한국은 러시아 미국 트리즈 전문가들에게서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서 작은 분야이지만 트리즈의 실용적인 응용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트리즈는 최근 기술적인 분야에만 적용됐던 초기 단계를 넘어서 다른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로 확산되고 있다. 경영 혁신 사례와 창의적인 서비스,생활 속의 아이디어들을 트리즈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묘하게 모순,갈등을 해소하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비즈니스 트리즈'란 이름과 함께 창조 경영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관심을 받아 더욱 발전하고 있다.

트리즈의 대표적인 특징은 '창의적인 유추 사고'와 '모순 해소'의 개념이다. 우수한 특허에서만 아니라 최근의 수많은 경영 혁신 사례,생활 속의 좋은 아이디어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창의적 문제 해결에는 이 특징이 있다.

"유형이 보이면 수능이 보인다"는 어느 광고문에서처럼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개념적으로 보면 분야는 달라도 문제와 그 해결안 사이에는 같은 문제 유형이 있다. 따라서 내가 고민하는 문제의 개념적인 해결안에 대해서 과거,다른 분야에 같은 유형의 문제 해결안이 이미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요즈음 가장 뜨거운 관심 품목인 스마트폰에 대한 예를 들어 보자.휴대폰 가입자가 증가하면서 통신되는 데이터 양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휴대폰 기지국의 서버 부담이 커져 기지국 증설의 요구가 늘어난다. 이 요구는 물론 더 빠르고 비싼 서버를 더 많이 설치하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해결 방법에는 큰 투자가 따른다.

창의적 문제 해결 전문가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휴대폰 기지국 설계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라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다른 분야를 찾아 보자.유심히 관찰해 보면 자동차 길이 막히는 교통 문제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휴대폰 기지국에 신호가 몰리는 것과 자동차로 길이 막히는 교통 문제가 개념적으로 비슷하다. 그러면 막히는 교통 문제를 경제적으로 해결한 사례를 생각해 보자.돈을 들여 모든 길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교통 방송을 이용해 병목 현상이 일어나는 구간의 교통정보를 제공해 길을 뚫어준다.

이를 개념적으로 벤치마킹해서 휴대폰 기지국 설계 문제에 적용하면 휴대폰 신호가 집중되는 특정한 채널의 신호를 한가한 채널로 우회시키는 해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사실 휴대폰 기지국 설계자와 도로 교통 전문가들은 서로 교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아주 다른 분야지만,두 문제는 같은 유형이다. 이와 같이 트리즈는 다른 분야의 좋은 해결책을 벤치마킹하며 창의적으로 유추 사고하는 것을 도와준다.

트리즈의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인 '모순 해소'에 대해서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영 분야의 딜레마 해소,모순 해소 사례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참 많은 회의를 하지만 모든 회의가 실질적으로 이롭거나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회의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회의 주관자인 사장 혹은 팀장은 회의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자주 불만을 얘기한다.

왜 효율적으로 회의를 못하고,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직원들이 회의에서 얘기를 하지 않는지 그 원인을 모두 열거해 보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사장,팀장 등 회의 리더의 존재 자체를 근본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있으면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꺼내거나,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럼 효과적인 회의를 위해서 사장,팀장 없이 팀원들끼리 회의를 해보자.덜 긴장된 분위기에서 웃어가면서 엉뚱한 아이디어,농담까지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 경우의 문제는 많은 아이디어를 각자의 입장에서 편하게 얘기했지만 결정이 안 돼 시간만 허비한 느낌을 준다. 이를 다시 갈등 분석도로 그려 보고 정확히 문제의 원인을 진단해 보자.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장을 있게 한다'가 해결 방법 혹은 수단일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직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게 하기 위해서는 '사장은 없어야 한다'와 최종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사장이 있어야 된다'란 문제 원인 및 상반된 1차 해결안으로 압축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사장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야 한다. ' 바로 모순이다. 이런 것을 트리즈에서는 물리적으로 동시에 값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물리적 모순'이라고 한다.

이런 모순에 대해서 트리즈는 '시간적으로 분리(separation in time)'해서 두 개의 상반된 목적을 모두 충족시키면서 물리적인 모순을 해소하는 원리와 관련된 많은 사례들을 보여 준다. 교차로 신호등도 좋은 '시간적 분리'의 예다. 교차로에서 자동차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호등으로 주행하는 차를 '시간적으로 분리'해서 원활하게 충돌 없이 딜레마 내지는 모순을 해소한 원리와 사례가 있다. 효과적인 회의 문제에 이 '시간적으로 분리'의 개념을 유추 사고적으로 적용해 보자.사장이 없으면 좋을 때,즉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낼 때는 없게 하고,의사 결정과 문제 상황을 설명할 때는 사장을 있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 회의에서 사장이 문제 상황을 설명한 다음,팀원들에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어 안을 만들라고 하고 회의장을 떠난다. 그 뒤 남은 직원들은 그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많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토론을 해서 구체적인 해결안을 만든다. 그 다음날 사장과 임원들이 같이 와서 정리 발표된 안들 가운데서 의사 결정을 현장에서 바로 한다. 얼마나 효과적인가. 이런 방법이 세계적인 기업 GE의 효과적인 회의,문제 해결의 장인 '워크 아웃 (workout)'의 기본 개념이다.



이경원 한국산업기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