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초 서울 성수동 신세계 이마트 사옥에서 열린 '이마트 경영실적 보고회'.경영진과 이마트 점장 등 25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신세계 경영지원실이 조사한 '업태 간 · 경쟁사 간 이마트 가격 비교' 결과가 발표됐다. 조사 결과 이마트 주요 품목 가격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경쟁사는 물론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과도 별 차이가 없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이마트가 가격경쟁력이 있는 것처럼 얘기해 왔지만 10원이나 100원 싼 정도로는 소비자들이 체감하지 못한다"며 "최소한 10% 이상 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세계 사업부문은 백화점과 이마트로 나뉜다. 1963년 출범한 백화점이 모태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집중 투자한 이마트가 급성장하며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의 80%에 육박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총괄 대표이사로 취임한 직후부터 '업(業)의 본질 회복'을 화두로 삼고 '상시 저가(EDLP) 실현을 통한 이마트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 들어 경기 회복세로 소비심리가 전반적으로 개선된 데다 정 부회장의 대표 취임 이후 본격 추진한 이마트'신가격 전략'이 성과를 거두면서 신세계는 올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지난 14일 발표한 이 회사 상반기 총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0% 증가한 6조 9915억원,영업이익은 15.5% 늘어난 4982억원을 기록했다. 정 부회장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신세계를 유통업계의 애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상시 저가' 통한 이마트 성장 재시동

신세계는 지난 1월7일 이마트의 '신가격 전략'을 발표하고 1차로 삼겹살 우유 초코파이 등 12개 생필품 가격을 내렸다. 이 전략의 핵심은 자체 마진을 축소하고 대량 구매 등을 통해 주요 생필품 가격을 상시적으로 낮춰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지난해 대형마트 업태의 성장 위기에서 비롯된 철저한 자기 반성에서 출발했다.

신세계는 1993년 서울 창동에 '이마트 1호점'을 낸 이후 공격적으로 점포수를 늘리면서 국내에 대형마트 시대를 열었다. 부지 선점 효과와 국내 소비자 특성에 맞춘 점포 운영으로 1996년 유통시장 전면 개방 이후 국내에 들어온 까르푸,월마트 등 세계적인 유통업체를 압도하며 '이마트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정점은 2006년 월마트 코리아 인수.1998년 국내 시장에 뛰어든 월마트는 "패배를 인정한다"며 신세계에 16개 점포를 모두 매각하고 한국 시장을 떠났다. 그해 이마트 전국 점포수는 100개를 넘었고,신세계는 이듬해 국내 유통업체로는 처음으로 연간 총매출 1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대형마트 성장 정체의 징후가 나타난 것도 이 즈음이다. 기존점 기준 구매객수가 2007년 처음으로 감소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매장 고급화와 상품수 증가로 비용이 늘어나고 1~2주만 싸게 팔다 다시 올리는 단기 할인행사 위주로 점포가 운영되면서 '상품을 항상 저렴하게 판다'는 대형마트의 본질을 망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신세계는 '상시 저가를 통한 가격경쟁력 회복'에서 해법을 찾고 정 부회장 주도로 지난해 10월부터 이마트 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매주 발행하는 행사용 광고전단지부터 없애고 일반 상품의 단기 할인 행사를 줄였다. 이마트는 신가격 전략 추진으로 대형마트 간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제조회사와의 갈등도 불거졌지만,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점 기준으로 지난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했고,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던 구매객수는 2.6% 늘어났다.

◆백화점 대형화 · 복합화로 고성장

신세계는 이마트가 성공가도에 접어든 2000년대 중반부터 백화점 투자를 본격화했다. 투자 전략은 '대형화 · 복합화 · 고급화'를 통해 각 점포를 해당 지역의 1번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신세계를 상징하는 충무로 본점부터 개조에 들어갔다. 2005년 문화홀과 갤러리 조각공원을 갖춘 신관을 개관하고 2007년 본관을 명품관으로 리뉴얼했다. 2006년 광주점,2007년 경기점을 영화관 등 각종 오락 ·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타운으로 선보이고 지난해 '세계 최대 백화점'인 부산 센텀시티점을 열었다.

백화점부문은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최근 3년간 '빅3'(롯데 · 현대 · 신세계)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 상반기에도 기존점 기준 매출이 12.8% 증가, '빅3'중 유일한 두 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도 2006년 13%에서 지난 상반기 19%로 껑충 뛰었다. 신세계는 내년 초 완공 예정으로 인천점의 매장 면적을 33% 늘리는 증축 공사를 진행 중이며 천안 야우리백화점 건물을 영화관과 갤러리 등을 갖춘 복합쇼핑공간으로 개발, 오는 12월 문을 연다.

신세계는 올해 신세계몰과 이마트몰 등 온라인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달 초 이마트몰을 전면 개편했다. 식품 위주로 취급 상품을 대폭 늘리고 오픈마켓 개념의 마켓플레이스도 접목했다. 전국 이마트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한 신속한 배송과 '점포 픽업' 등 맞춤형 서비스로 온라인쇼핑객을 공략,지난해 940억원 수준이던 매출을 2012년 1조원대로 끌어올려 온라인쇼핑몰 업계 1위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