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연속극을 보면 '이쯤되면 나와 줘야지…'하는 타이밍에 정확히 내가 예상했던 장면이 나오는 때가 있다. 작년에도 보았고,지난달에도 보았고,지난 주에도 어딘가에서 보았던 장면들.필요 이상으로 시청자의 기대를 배려한 정직한 플롯들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왜 드라마에는 늘 같은 플롯들이 돌고 도는 것일까? 아마도 작가가 극중 주인공을 통해 최종회에서 던지고 싶은 촌철살인의 독백 한 줄이 실상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사들의 기업PR 광고를 보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들이 PR하고 싶은 메시지의 실체,즉 키 메시지의 '답'도 서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각 기업의 PR을 책임지는 기업인들,또 각 기업의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책임지는 광고인들은 모두 난제에 빠져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편의성을 증진시키는 모바일로 사람을 보다 편리하게'라는 기존의 보편적인 키 메시지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그리 좋은 수라 할 수 없다. 모든 경쟁브랜드들이 이미 공유해버렸음은 물론,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는 메시지이므로 태생적으로 차별화된 크리에이티브로 발전시키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의 트렌드를 이어 공감대를 끌어 내는 방법은 어떨까? '스마트폰'은 한국의 정보기술(IT)을 가장 뜨겁게 달군 2010년 상반기 최고의 트렌드 키워드다.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모바일의 진화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IT 제품의 트렌드에 특히 민감한 우리나라 모바일 유저들에게 문자메시지,음성통화,영상통화,mp3 플레이 기능 등은 이제 '최소'가 돼 버렸다. 그들은 이제 더 많은 것들을 모바일에 기대하고 있다.

눈부신 모바일 기술의 발전을 앞세워 지금까지 미처 유저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유저보다 모바일이 먼저 제시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양한 재미와 편의를 제공하고 그 밖에도 다양한 삶의 부가 가치를 창출해줄 수 있는 '지금까지 없었던 세상을 선물해주는 각별한 존재'를 원하고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첨단 기술과 무수한 애플리케이션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이라는 키 메시지를 광고 크리에이티브로 구성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 하지만 이 또한 모든 경쟁사가 광고 크리에티브로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그리 명쾌한 답은 아닌 듯하다. 이렇게 경쟁 구도에 놓인 모든 기업들이 지향하는 광고 메시지가 유사한 상황에서 특정 기업이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를 구성해내는 최고의 묘안은 무엇일까.

"원곡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악보를 보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서부터 시각을 잃은 천재 소울 뮤지션 레이 찰스(Ray Charles Robinson)의 말이다. 진리를 꿰뚫는 명쾌한 이 가이드 라인을 적극 수용한 광고가 있다. '서로 다른 세상이 만나 모두가 +α 되는 세상을 만든다'라고 이야기하는 SK텔레콤의 기업PR 광고,'알파라이징'편이다.

레이 찰스가 원곡을 뛰어넘는 명곡을 위해 악보를 보지 않은 것처럼,SK텔레콤도 지난 광고들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던 것처럼 보인다.

명광고 중의 명광고로 평가받아 온 기존의 자사PR 광고에서 잠시 한 발자국 물러나 현재 상황에서 최적의 크리에이티브를 연출해낸 듯 하다.

기존에 등장했던 이분법적인 구도가 사라졌다. 더 이상 기술이 사람에게 진다고 이야기하지 않았고 기술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이분법적인 구도가 사라진 자리에는 '기술과 사람이 만나 모든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기대감을 돋우는 상생의 드라마가 놓여진 것이다.

'알파라이징'편에는 유독 크리에이터가 고민한 흔적이 진하게 엿보인다. 이 광고는 트렌디한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 맞게 이동통신사의 새로운 가치 지향점을 용기 있게 제시했다.

또한 원작의 명크리에이티브를 뛰어 넘기 위해 이전처럼 '기술'도 '사람'도 구분지어 바라보지 않았다. 기술과 사람이 좌우로 놓여진 세상이 아닌 '기술의 기능'에 '사람의 지혜'가 한 개의 점에 더해져 생긴 새로운 하나의 세상을 보았을 뿐이다.

답은 적고 고민은 많은,쉽지 않은 광고의 전장에서 크리에이티브 구성의 묘를 발휘한 SK텔레콤의 '알파라이징'편에 박수를 보낸다.

유장선 엠포스 AE · 광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