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의 채무 지급유예(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남시는 호화청사 문제에 이어 2012년까지 판교특별회계에 상환해야 할 5200억원의 지급을 2013년으로 유예한다고 밝혔다. 성남시의 지급유예 선언에 대해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영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라는 시각과 신임 시장의 정치적 행보라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어떤 시각이 맞든 간에 성남시의 선언은 지자체의 방만 재정운영과 관련해 적잖은 파장을 불러올 게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지자체의 빚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전국 246개 지자체의 지방채 잔액은 25조5331억원이다. 이는 민선4기 지자체장이 출범한 2006년 말에 비해 46.5% 증가한 수치이다. 그러나 재정운영의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미약하다 보니 방만한 재정운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선심성 사업으로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지고,자체 재원으로 공무원 월급을 주지 못해도 중앙정부에서 채워주기 때문에 재정운영의 건전화에는 소홀하다.

이번 성남시의 문제도 방만한 재정운영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와 연관이 있다. 성남시는 5200억원의 상환에 대해 지방채 발행과 예산절감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빚을 또 다른 빚을 내서 돌려 막겠다는 것이다. 2013년까지 3년 동안 상환하기 위해서는 1년에 1000억원 이상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데,올해 성남시의 지방채 한도액은 465억원에 불과하다. 지방채 발행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다행히 지급유예가 성립되더라도 다른 지자체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당장 2조4000억원이 넘는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는 인천광역시,자산 대비 부채비율 7.5%로 시 · 도 중 세 번째로 높은 강원도로 파급될 수 있다. 지자체장의 정당 소속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의 사업추진과 재정운영을 비판하는 정치적 용도로 악용될 수도 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빚을 내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하면서 지급유예를 선언하거나 채무이행을 거부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국가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번 성남시 문제는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영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 도입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현재는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영에 의한 지급유예 또는 채무불이행을 통제할 수 없는 제도적 공백 속에 있다. 지급유예에 대한 규정이 없고,지자체 파산제도에 대한 근거규정도 전무하다. 지방재정법에 근거해 재정진단제도를 운영하고 있고,위법한 재정운영에 대해 감사를 통해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영을 막으려면 우선 1단계로 정기적인 재정진단을 통해 방만한 재정운영에 대해 경고 및 시정 권고해야 하고,2단계로 무리한 사업추진과 재정운영상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 3단계로 건전한 재정운영을 통해 적절한 채무상환을 유도하기 위해 예산편성에 대한 승인제도를 도입하고,마지막 단계로는 파산제도의 도입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예산편성에 대한 승인이나 파산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는 자치권 침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 재정책임이 담보되지 않는 자치(자율)는 풀뿌리민주주의를 뿌리째 갉아먹는다. 방만한 재정운영에 대한 강력한 책임을 묻는 장치가 없다면 '제2의 성남시' 문제는 언제든 터질 것이고,이는 지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지자체의 능력을 벗어난 무리한 사업추진과 방만한 재정운영에 대해 파산제도를 두고 있는 것도 자치에 따른 재정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하혜수 경북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