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9일 정책금리(기준금리)를 연 2.0%에서 연 2.25%로 올리면서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본격 시작됐다. 출구전략은 금융위기가 대공황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취한 각종 정책을 되돌리는 것을 말한다.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취한 정책은 재정 금융 통화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시행됐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투입을 늘렸고,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했으며 자금경색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낮춰 돈을 푼 것 등이다.

전문가들은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의 긴축 등 해외 불안요인이 여전한 가운데 각 분야에서 출구전략이 한꺼번에 빠른 속도로 실시될 경우 경기를 다시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만큼 적절한 정책 조합(policy mix)과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반기 예산 55조원 줄어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질 당시인 2008년 정부 예산은 262조8000억원이었다. 정부는 경기가 급랭하자 2009년 예산을 273조4000억원으로 늘려 편성했다.

하지만 경기부양 자금이 모자라자 지난해 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해 경기살리기에 쏟아부었다. 당시 추경예산 규모는 28조4000억원에 이르러 '슈퍼 추경'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이후 경기 회복세가 빨라지자 올해부터 재정투입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올해 예산은 292조8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9조원 줄었다.

재정부문 출구전략은 하반기에 속도가 빨라진다. 재정 조기투입의 여파로 투입액이 상반기 163조원에서 하반기 108조원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성장률은 상반기 7.4%에서 하반기 4.5%로 둔화가 예상(한국은행 전망)된다.

여기에 공공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련됐던 희망근로프로젝트와 청년인턴제가 하반기엔 없어진다. 고용사정이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 여파로 재정건전성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며 내년부터는 정부가 수입은 늘리고 지출은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재정건전성을 강화한다는 정책 기조에 따라 비과세 · 감면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작년에 도입하지 못한 과세 기반 확대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대표적으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내년부터 폐지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풀었던 돈 대부분 거둬들여


정부와 한은은 그간 금융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풀어왔다. 2008년 말 달러가 말라버리자 외환보유액 및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맺은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267억달러를 금융회사에 공급했다. 이 돈은 올초 전액 회수됐다.

한은이 환매조건부채권(RP)매매를 통해 공급한 17조원도 이미 환수됐다. 은행 자본건전성을 높여 주기 위해 조성됐던 자본확충펀드에서 한은이 자금을 빼기 시작했으며 채권시장안정펀드도 회수 방침이 확정됐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대한 출구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보증비율을 100%까지 높여주고 대출 만기가 돌아오면 일괄 연장해 줬으나 보증비율은 올해 하반기 들어 85%로 낮아졌다. 만기도 개별평가로 연장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긴급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인 패스트트랙은 일단 연말까지로 시한이 연장됐다. 은행이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대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은의 총액한도대출도 증액분 3조5000억원 가운데 1조5000억원이 줄었다.

◆"충격 최소화 방안 필요"


유럽중앙은행(ECB)은 남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가 터지자 상당 기간 정책금리(현재 연1.0%)를 동결하기로 하는 한편 회원국들의 국채를 매입해 주기로 했다. 재정 쪽 출구전략을 가동하는 동안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경기가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차 하강)에 빠지지 않도록 통화 및 금융 쪽에서 완화 정책을 유지키로 한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도 재정 금융 통화 등 각 부문에서 출구전략을 조화롭게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시다발적으로 급속하게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출구전략으로 재정적자 축소→임시 금융지원 회수→기준금리 조정 등의 순서가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은에 점보 스텝(jumbo step) 방식의 기준금리 인상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권했다. 점보 스텝은 0.25%포인트씩 조정하는 베이비 스텝(baby step)과 달리 한꺼번에 0.5%포인트 이상 금리를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황 위원은 "하반기부터 재정 투입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을 민간이 모두 만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민간의 회복력을 확인해 가며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준동/서욱진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