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디플레는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국민들의 보유 자산이 줄고 씀씀이가 감소하면 나라 경제 역시 활력을 잃기 쉽다. 일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된 후 소비는 부진하기 짝이 없고 나라 경제는 아직도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은 20년째 내리막길이다. 단기간에 큰 폭의 조정을 거친 주식시장과 달리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현재 전국 시가지 땅값은 1990년 3월 대비 평균 54% 하락했다. 한창 때의 절반에도 미달한다. 주택지는 평균 39%,상업지는 평균 70% 주저앉았다. 분석 대상을 도쿄 요코하마 교토 오사카 나고야 고베 등 6대 도시로 압축하면 더욱 처참하다. 같은 기간 하락률이 72%에 이른다. 주택지는 63%,상업지는 83%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국민들의 보유 자산 규모도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일본 정부의 전국소비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4년11월 말 현재 도시가구 평균자산은 3900만엔으로 직전 조사 시점인 5년 전의 4386만엔에 비해 11%가 다시 줄었다. 금융자산은 소폭 늘었지만 주택 등 실물자산 가치가 540만엔이나 감소한 탓이다. 2009년 기준 조사에서도 자산 규모는 더욱 줄어든 결과가 나올 게 뻔하다.

자산디플레는 일본 경제 장기 불황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자산 감소가 기업과 가계의 담보능력 약화,소비 여력 감소로 연결되며 경기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까닭이다. 1990년 31만1174엔이던 세대당 월평균 지출은 2008년 29만6932엔으로 줄었다. 소비 둔화가 기업 환경을 어렵게 만들고 고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경제 전체를 부진의 늪에 빠뜨리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요즘 한국에서도 일본 같은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부동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주택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이 급증하고,거래는 급감한 탓이다. 주택 가격 또한 급락 추세여서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내 집'이 애물단지로 바뀌었다는 한숨이 가득하다. 용산국제업무단지 같은 초대형 사업들이 줄줄이 좌초의 위기에 처한 것도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드러내준다.

더구나 금리가 상승 추세로 돌아서 걱정이 크다. 지난주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상은 이제 출구전략이 시작됐고,당분간 금리가 오름세를 타게 될 것임을 뜻한다. 거액의 융자를 안고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의 경우 집값 하락과 이자 부담이란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3월 말 현재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 부채 원금이 1700조원에 이르고 이 중 가계 부채가 863조원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경각심을 갖게 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일본이 겪은 과정을 똑같이 밟을 것이란 뜻은 아니다. 다행히 버블 붕괴 당시의 일본과 달리 우리 주식시장은 견조한 움직임을 유지하고 있다.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관리하고 있는 점 또한 우려를 완화시켜 준다. 자산디플레 현상이 나타난다 해도 일본보다는 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자산 중 부동산이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실수요자들의 매매가 이뤄지는 가운데 주택가격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대출 상환기간 연장,만기 구조 장기화 등으로 채무자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고 거래 활성화를 도모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 볼 일이다. 부동산에서 비롯된 자산디플레가 금융불안,경제불안으로 이어진 일본의 사례를 답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