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50년 성장모델의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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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4월27일 북한에서 과학자대회가 열렸다. 전력과 지하자원 개발,기계공업과 철강공업 육성,비료 육종 등 식량문제 해결,의류문제 해결,그리고 과학원 창설이 과제로 제시됐다. 국내 자원과 국내 기술로 자력갱생,자급자족하자는 것이 요점이었고 김일성은 이것이 바로 주체사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한동안 북한이 우리보다 앞섰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던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전(全)산업의 수출화'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북한과 달리 완제품 수출→중간제품→중간원료→기초원료로 거슬러 올라가는 '피라미드형 개발전략'을 채택했던 것이다. 의류 수출로 시작해 직물 합성섬유 석유화학으로 옮겨가고, 가전을 수출하면서 반도체로 영역을 확장해가는 방식이었다.
북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폐쇄경제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전락했고, 반면 우리는 자원과 기술을 해외에 의존했지만 수출을 바탕으로 확대 재생산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우리의 피라미드형 전략은 내부적으로 자원과 기술이 없던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의 세계경제 환경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신화적 성공을 가져왔다. 한마디로 개방경제의 승리였고, 지금의 우리 대기업들과 주력산업은 이렇게 창출됐다.
엊그제 녹색성장위원회 제8차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 시대에는 우리의 원천기술과 우리의 소재를 갖고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기술과 소재를 수입,조립해서 수출하면 우리는 녹색성장의 멍석만 깔고 정작 재미는 선진국들이 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그렇게 표출한 것이지만,거시적으로 보면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후 거의 50년간의 성장 패러다임을 한번 바꿔보자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성장전략은 큰 시장과 기술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능력도 이제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고 100% 우리의 원천기술,우리의 소재라는 전략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개방경제에서 그것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세계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최적의 전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녹색관련산업에서 원천기술, 소재의 해외의존도가 너무 높아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주장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성장전략의 전환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녹색산업을 위한 금융 · 재정지원책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된다. 지난 50년간의 산업구조와 산업조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기술력을 가진 중소 · 중견기업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창출돼야 하고,대기업과 이들의 협력관계도 선진화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도 그렇다. 원천기술과 소재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려면 지난 50년간 모방형 추격을 지원하기 위해 짜여졌던 연구시스템의 전면적 개편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창조나 기초 · 원천은 돈만 더 투자한다고,또 우리내부의 인적자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까닭이다. 기업,대학,정부연구소의 관계도 원점에서 재정비돼야 한다. 기업가정신을 자극하려면 연구개발 세제혜택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으로 높이고 이를 영구화하는 결단도 요구된다. 누가 이런 개혁들을 추진할 것인가. 핵심은 여기에 있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이후 한동안 북한이 우리보다 앞섰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던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전(全)산업의 수출화'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북한과 달리 완제품 수출→중간제품→중간원료→기초원료로 거슬러 올라가는 '피라미드형 개발전략'을 채택했던 것이다. 의류 수출로 시작해 직물 합성섬유 석유화학으로 옮겨가고, 가전을 수출하면서 반도체로 영역을 확장해가는 방식이었다.
북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폐쇄경제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전락했고, 반면 우리는 자원과 기술을 해외에 의존했지만 수출을 바탕으로 확대 재생산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우리의 피라미드형 전략은 내부적으로 자원과 기술이 없던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의 세계경제 환경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신화적 성공을 가져왔다. 한마디로 개방경제의 승리였고, 지금의 우리 대기업들과 주력산업은 이렇게 창출됐다.
엊그제 녹색성장위원회 제8차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 시대에는 우리의 원천기술과 우리의 소재를 갖고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기술과 소재를 수입,조립해서 수출하면 우리는 녹색성장의 멍석만 깔고 정작 재미는 선진국들이 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그렇게 표출한 것이지만,거시적으로 보면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후 거의 50년간의 성장 패러다임을 한번 바꿔보자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성장전략은 큰 시장과 기술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능력도 이제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고 100% 우리의 원천기술,우리의 소재라는 전략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개방경제에서 그것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세계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최적의 전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녹색관련산업에서 원천기술, 소재의 해외의존도가 너무 높아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주장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성장전략의 전환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녹색산업을 위한 금융 · 재정지원책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된다. 지난 50년간의 산업구조와 산업조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기술력을 가진 중소 · 중견기업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창출돼야 하고,대기업과 이들의 협력관계도 선진화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도 그렇다. 원천기술과 소재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려면 지난 50년간 모방형 추격을 지원하기 위해 짜여졌던 연구시스템의 전면적 개편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창조나 기초 · 원천은 돈만 더 투자한다고,또 우리내부의 인적자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까닭이다. 기업,대학,정부연구소의 관계도 원점에서 재정비돼야 한다. 기업가정신을 자극하려면 연구개발 세제혜택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으로 높이고 이를 영구화하는 결단도 요구된다. 누가 이런 개혁들을 추진할 것인가. 핵심은 여기에 있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