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아자동차의 성장세가 무섭다. 2005년 '디자인 경영'을 기치로 세계 3대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를 부사장으로 영입해 디자인 부문을 강화해 온 기아차는 로체 이노베이션을 시작으로,포르테 쏘울 쏘렌토R에 이어 최근 K7, K5 등 'K시리즈'를 연달아 히트상품 반열에 올리고 있다. 1998년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이래 사상 최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차인 K5가 출시된 5월부터는 '형님'인 현대차까지 제치고 승용차 내수판매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아차의 '질주'가 올해도 파업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됐다. 지난 6월25일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에서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조합원 65.7%의 찬성으로 가결되면서 파업돌입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노사관계는 지난 4월 노조측이 전임자 임금 문제를 임단협 요구사항에 끼워 넣으면서부터 경색되기 시작한 바 있다.

이번 파업의 쟁점이 되고 있는 기아차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요구를 들어보면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지난 7월1일부터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의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원칙에 따라 19명으로 줄여야 할 전임자 수를 기존과 같이 181명 모두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게다가 노조에서 자체 채용한 상근직원의 급여까지 회사가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제도는 1997년 법률에 도입되고도 노사가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13년을 유예해 온 사안이다. 이러한 '뜨거운 감자'에 대해 이제는 마침표를 찍어 보자며 지난해부터 노 · 사 · 정 대표들이 수십 차례 만나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은 완전히 금지하고 일정한 노조활동에 대해서만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를 허용하게 하자'는 합의를 도출한 것이다. 그럼에도 기아차 노조는 회사가 나서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라고 강요하는 형국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사측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법률이 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노조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 기아차 노조 내의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소하리,화성,광주 등 3개 기아차 공장의 생산자관리협의회와 현장조직들은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파업으로 놓칠 수 없다며 노조 집행부의 투쟁방침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19년간 기아차 노조는 한 해도 파업을 거르지 않은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도 그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20년 연속 파업이라는 '대기록'(?)을 이어가겠다는 배짱이다. 특히 지금 기아차의 힘겨루기는 타임오프제도를 무력화하려는 강성노동운동계와 타임오프제도를 안착시켜 노사문화를 선진화하려는 경영계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기아차는 외환위기 당시 그룹이 해체되고 워크아웃 당하는 아픔을 이겨내고 마침내 내수판매에서 1위가 되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노사가 합심해 품질과 생산성 향상에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정치투쟁과 노조 집행부의 이기주의에 따른 불법파업으로 날려버려서야 되겠는가.

진정한 '1등 기업'이 되려면 당장의 실적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노조가 경영자의 건전한 파트너로서 법을 지켜야 하고 근로자도 회사 전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합리적 자세를 갖춰야만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이어갈 수 있다.

기아차 노조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법률을 무시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사측도 생산 차질을 막는 것이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노사관계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바로 세운다는 마음으로 법과 원칙을 끝까지 지켜주기를 기대한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