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회장 "목표 정해놓고 다가갈 때마다 행복"
"잠실점이 처음 문을 열기 전,그곳은 황량한 모래벌판이었습니다. 지금의 석촌호수는 그냥 물웅덩이였고,비가 오면 한강이 범람해서 물이 차는 유수지였습니다. 근처에는 봉은사밖에 없었고 대부분 참외밭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백화점과 테마파크를 만든다고 하니 우리는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당시 경영진이 명동은 상권이 좋아서 잘되지만 여기는 배후 상권이 전혀 없어 장사가 안 될까 걱정된다고 했더니 회장님은 '그렇겠지,상권은 만들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장님은 2년 안에 이곳이 명동만큼 번화한 곳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셨고,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이철우 롯데쇼핑 대표)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하고,껌장사로 시작해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과 불굴의 의지와 추진력으로 오늘날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일궈낸 신격호 회장(88).

아흔에 가까운 고령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경영 일선을 진두지휘하는 신 회장의 경영철학과 성품,인생관 등을 주변 인사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담아낸 책이 나왔다. 임종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14일 출간된 《롯데와 신격호,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청림출판)에서 신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과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 사장,이철우 대표 등 롯데 임직원 30명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 신격호'의 이야기를 묶어냈다.

이 대표는 신 회장을 "항상 큰 그림을 그리고 창조하는 경영자"로 묘사했다. 신 회장은 1979년 서울 소공동에 문을 연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바닥을 최고급 대리석으로 시공하라고 지시했다. 주위에서는 "국내 문화수준을 감안했을 때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제공하고 보여주면 문화도 점점 발전한다"며 "백화점은 그 나라의 경제와 위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선진국 수준의 품격 있는 점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장님이 사업을 확장할 때 투자하는 것을 보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예전에 미도파백화점을 인수할 때 현대보다 300억~400억원 정도만 더 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회장님은 '800억원 더 써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말려도 회장님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베팅하는 것을 보면 겁이 날 정도입니다. 회장님은 늘 '앞으로 사업 잘하면 되는 거 아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

이인원 사장은 책에서 '뜻을 세우면 과감하게 투자하는' 신 회장의 일면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또 "회장님은 잠들기 전까지도 사업구상을 하는 걸로 유명하다"면서 일화를 꺼냈다. "임원진이 옆에서 '회장님 좀 쉬셔야 합니다'라고 말을 할 때마다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사업구상을 하면 행복해.뭔가 목표를 정해놓고,그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다 이루었다 하면 무슨 재미냐.나는 24시간 생각해.이 다음에는 뭘 어떻게 저 이상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까 꿈을 꾸고 설계를 하는거야.'"

신영자 사장은 신 회장의 '완벽주의자'인 모습과 인간적인 면면을 함께 강조했다. 신 사장은 "회장님은 매사 근면하시고 철저하십니다. 혼자 계셔도 흐트러진 자세는 한 번도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누가 옆에 있든 없든 행동이 똑같으세요. 항상 자세는 바로 앉으시고,머리도 옷도 단정하게 하십니다"라고 전했다.

또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각별해 젊은 시절 최고로 값진 옷이나 시계 등을 동생들에게 주고,일찍 혼자된 고모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준 분"이라고 소개했다.

저자인 임 교수는 "한국 최초의 고급 지하 상업공간 개발 사례인 롯데 1번가,국내 최초의 쇼핑몰인 소공동 롯데타운,아시아 최초 복합상업시설인 롯데월드와 같은 공간은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었다"며 "롯데의 근원인 신 회장의 성공신화가 비즈니스맨 누구에게나 큰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