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원근법 발견 전까지 화가는 기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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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무엇인가 | 베레나 크리거 지음 | 조이한·김정근 옮김
| 휴머니스트 | 376쪽 | 1만8000원
르네상스와서야 화가·시인 동등
'예술가=천재'는 여전히 논란
| 휴머니스트 | 376쪽 | 1만8000원
르네상스와서야 화가·시인 동등
'예술가=천재'는 여전히 논란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이지만 엄격한 아버지는 자식의 예술적 표현을 높이 평가하기보다는 벌을 준다. 그런데도 내적 충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는 역경 속에서도 뜻을 꺾지 않고 에술가의 길을 걷는다. 그는 심혈을 기울여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리지만 아버지는 그의 그림을 불태우고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우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아들은 자유를 추구하고,마침내 자유를 얻는다. 운 좋게 예술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긴 세월이 걸리는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을 마치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정숙한 소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에게 시민으로서의 안락한 삶을 제공할 수 없다.
미래를 상상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강퍅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주문 작업을 해야 한다. 최후의 날까지 원하지 않는 작업 때문에 절망하던 그는 죽고나서 비로소 명성을 얻게 된다. 이제 그의 작품으로 돈을 버는 건 화상들뿐이다.
어디서 많이 듣고 본 이야기다. 어린 시절의 재능,재능을 방해하는 주변 환경,시민적 관습에서 벗어난 삶과 가난,예술을 향한 소명과 밥벌이의 간극,비극적인 요절,그리고 사후의 명성.19세기 독일에서 활동한 미술가 아돌프 멘첼은 1834년 괴테의 시 '예술가의 인생역정'에 이처럼 전형적인 예술가의 삶을 동판화로 제작해 예술가로 성공했다.
《예술가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예술가'하면 떠올리는 전형적 모습이 형성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예술가라는 말과 함께 흔히 '자유로운 영혼' '아름다움'을 떠올리지만 이 같은 생각이 일반화되기까지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술가란 어떤 존재이며,예술적 창조성은 어떻게 작동하는지,'예술가=천재'라는 인식과 생각이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를 추적하며 예술사를 산책한다.
'예술가'라는 용어는 사실 근대에 고안된 말이다. 그 이전에는 화가,조각가,건축가였지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들의 작업은 직조나 목공 등 다른 수공업과 마찬가지로 '기술'로 간주됐다. 건축학도 자유교양학문에 속하는 문법,수사학,논리학,천문학,음악과 마찬가지로 산수와 기하학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했으므로 예술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다.
이에 비해 시와 음악은 자유교양학문이어서 화가나 조각가는 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했다. 시인과 동등한 지위를 얻으려는 조형예술가들의 꿈은 르네상스기에 와서야 실현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3차원의 육체를 2차원적 평면에 투사시키는 방법,즉 원근법을 발견해 절친한 동료인 도나텔로와 마사초에게 알려줬다. 이때부터 지식과 관습에 의지해 공간을 표현했던 화가들은 과학적 토대 위에서 작품을 만들게 됐고,비로소 수공업자에서 창조자로 위상이 높아졌던 것이다.
예술가의 천재성에 주목하게 된 것도 르네상스기였다. 천부의 재능,창조성과 영감은 원래 분명하게 구분되는 의미였으나 르네상스기에 와서 이들 개념의 경계가 사라지고 예술가의 주관성,개인적 성향,내면의 관조를 중시하게 됐다.
천재의 광기에 대한 생각도 역사적 변천을 겪어야 했다. 위대한 예술가는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겪는다는 생각의 뿌리는 고대 플라톤적 열광이론에까지 닿아 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는 예술가와 그의 창조과정을 비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천재 예술가의 개념이 20세기 초에 와서 절정에 이르자 아방가르드파는 창조적인 능력은 소수의 천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라며 다양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예술가란 누구인가. 저자는 다양한 탐색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데도 예술가가 누구인지 정의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일상에서 꿈꾸고 바라는 것을 예술가가 상징적으로 체현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고 바라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그러나 아들은 자유를 추구하고,마침내 자유를 얻는다. 운 좋게 예술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긴 세월이 걸리는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을 마치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정숙한 소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에게 시민으로서의 안락한 삶을 제공할 수 없다.
미래를 상상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강퍅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주문 작업을 해야 한다. 최후의 날까지 원하지 않는 작업 때문에 절망하던 그는 죽고나서 비로소 명성을 얻게 된다. 이제 그의 작품으로 돈을 버는 건 화상들뿐이다.
어디서 많이 듣고 본 이야기다. 어린 시절의 재능,재능을 방해하는 주변 환경,시민적 관습에서 벗어난 삶과 가난,예술을 향한 소명과 밥벌이의 간극,비극적인 요절,그리고 사후의 명성.19세기 독일에서 활동한 미술가 아돌프 멘첼은 1834년 괴테의 시 '예술가의 인생역정'에 이처럼 전형적인 예술가의 삶을 동판화로 제작해 예술가로 성공했다.
《예술가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예술가'하면 떠올리는 전형적 모습이 형성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예술가라는 말과 함께 흔히 '자유로운 영혼' '아름다움'을 떠올리지만 이 같은 생각이 일반화되기까지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술가란 어떤 존재이며,예술적 창조성은 어떻게 작동하는지,'예술가=천재'라는 인식과 생각이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를 추적하며 예술사를 산책한다.
'예술가'라는 용어는 사실 근대에 고안된 말이다. 그 이전에는 화가,조각가,건축가였지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들의 작업은 직조나 목공 등 다른 수공업과 마찬가지로 '기술'로 간주됐다. 건축학도 자유교양학문에 속하는 문법,수사학,논리학,천문학,음악과 마찬가지로 산수와 기하학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했으므로 예술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다.
이에 비해 시와 음악은 자유교양학문이어서 화가나 조각가는 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했다. 시인과 동등한 지위를 얻으려는 조형예술가들의 꿈은 르네상스기에 와서야 실현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3차원의 육체를 2차원적 평면에 투사시키는 방법,즉 원근법을 발견해 절친한 동료인 도나텔로와 마사초에게 알려줬다. 이때부터 지식과 관습에 의지해 공간을 표현했던 화가들은 과학적 토대 위에서 작품을 만들게 됐고,비로소 수공업자에서 창조자로 위상이 높아졌던 것이다.
예술가의 천재성에 주목하게 된 것도 르네상스기였다. 천부의 재능,창조성과 영감은 원래 분명하게 구분되는 의미였으나 르네상스기에 와서 이들 개념의 경계가 사라지고 예술가의 주관성,개인적 성향,내면의 관조를 중시하게 됐다.
천재의 광기에 대한 생각도 역사적 변천을 겪어야 했다. 위대한 예술가는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겪는다는 생각의 뿌리는 고대 플라톤적 열광이론에까지 닿아 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는 예술가와 그의 창조과정을 비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천재 예술가의 개념이 20세기 초에 와서 절정에 이르자 아방가르드파는 창조적인 능력은 소수의 천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라며 다양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예술가란 누구인가. 저자는 다양한 탐색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데도 예술가가 누구인지 정의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일상에서 꿈꾸고 바라는 것을 예술가가 상징적으로 체현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고 바라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