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의 경제학] 美정부 빚 13조弗에 하루 이자 10억弗…글로벌 경제도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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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적자 쌓여 국채 발행 늘리다간 금리상승으로 세계경제 위협…안전자산 아닌 시한폭탄 우려
지출축소 외엔 뾰족한 대책 없어…장기적 재정건전성 확보 시급
적자 쌓여 국채 발행 늘리다간 금리상승으로 세계경제 위협…안전자산 아닌 시한폭탄 우려
지출축소 외엔 뾰족한 대책 없어…장기적 재정건전성 확보 시급
미 국채는 안전자산인가,시한폭탄인가. 미국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하는 무신용위험 채권이라는 점에서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유동성이 가장 풍부한 채권이기도 하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의 상당 규모를 미 국채에 투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 연방 재정적자를 감안하면 언제까지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적자가 불어나면 미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한다. 당연히 금리가 치솟고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정책임 · 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려는 것도 파국을 막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1917년 첫 발행 후 계속 진화
미국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비용을 대기 위해 1917년 국채를 처음 발행했다. 세금만으로 막대한 전비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1차 세계대전 중 215억달러의 '리버티 본드(liberty bonds)'를 발행했다. 처음에는 채권가격과 쿠폰(명목 이자율)을 공표하고 발행물량을 주문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subscription offering)으로 발행했다. 이후 국채가 투자자들 사이에 유용한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고 금리변동성이 커지자 1970년 '가격입찰 방식'이 도입됐고 1974년에는 '금리입찰 방식'으로 변경됐다.
미 국채의 종류는 만기 전 매매가능 여부에 따라 시장성 및 비시장성 채권으로 구분된다. 시장성 국채는 기한에 따라 재무부 빌(treasury bill),재무부 노트(treasury notes),재무부 본드(treasury bonds)가 있다. 빌은 만기가 1년 이내이며 이자 지급이 없는 할인채 형태다. 최대 10년 만기인 노트와 만기가 이보다 더 긴 본드는 6개월마다 이자가 지급되는 이표채 형태로 각각 발행된다.
1997년부터는 인플레이션율에 따라 원리금 지급액이 달라지는 물가지수 연동국채인 'TIPS(Treasury Inflation-Protected Securities)'가 발행되고 있다.
비시장성 국채에는 사회보장기금,연방노후신탁기금 및 저축채권 등이 포함된다. 정부 산하기관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3월 말 현재 보유하고 있는 5조2590억달러의 국채는 대부분 비시장성 국채다.
◆해외투자자가 31% 보유
미 국채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인 만큼 연방정부의 빚 규모를 국채 발행 잔액으로 보면 된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미국 빚 시계'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의 부채는 13조달러를 넘었다. 이 중 3분의 2가량의 채권을 민간 개인투자자와 기업 및 외국 중앙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비시장성 국채 형태로 사실상 정부가 보유하고 있다. '베이비 붐' 영향으로 사회보장기금이 미 국채 수요를 상당 부분 떠맡아 온 셈이다.
외국 중앙은행 등 해외투자자들도 미 국채 투자의 큰손들이다. 주요 수출국인 중국과 일본 등이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달러 자산인 미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미 달러 가치 하락을 방지할 수 있다. 그래야 수출로 계속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야기한 요인으로 지목된 '세계 불균형' 문제도 바로 미 국채를 매개체로 빚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 해외투자자들이 미 국채 투자를 늘리면서 미 국채의 해외투자자 보유 비중은 3월 말 현재 31% 수준으로 높아졌다.
◆발행 물량 매년 증가
미 국채 발행이 증가한 것은 미 연방정부가 거둬들인 세금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매년 누적되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바로 미국민이 갚아야 할 공공부채다. 미국인 1인당 4만2000달러,납세자 1명당 12만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는 셈이다.
연방정부의 부채는 금융위기 직후 7000억달러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과 862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정 집행이 증가하면서 급증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미 정부 재정은 방만했다는 지적이 많다. 2000년 말 6조달러 규모이던 정부 부채는 2007년 말 9조달러로 증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으로 재정부담이 증가해 앞으로도 빚 규모를 줄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채무 위기에서 확인됐듯,국가가 일단 '빚 함정'에 빠지면 이자 부담 증가와 경기 위축을 가져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미 정부가 낸 빚 이자는 3830억달러에 달한다. 하루 이자로만 10억달러 이상씩 내고 있는 셈이다.
◆세계경제 좌우할 정도로 덩치 비대
미 국채 발행이 증가한다는 것은 후세들이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인위적으로 세금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물론 경기가 회복돼 자연스럽게 세수가 증가하면 미 재정문제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저성장 · 고실업'을 의미하는 '뉴노멀' 시대에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탄력적인 경제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국 중앙은행 등 해외투자가들이 계속 미 국채를 사줄지도 장담할 수 없다. 미 국채 수요가 감소하면 연방정부는 이자율을 높여야 하고 이는 결국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 국채 수요 감소는 기축통화인 미 달러 가치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미 국채를 사기보다는 팔려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발행된 국채 규모가 너무 많아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는 정책을 펼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 국가채무에 대한 금융시장의 우려가 궁극적으로 미국을 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