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여행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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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으로 보편을 이해하는 것
낯선 도시와 골목서 맘껏 헤매자
낯선 도시와 골목서 맘껏 헤매자
휴가철을 앞두고 여행계획 수립이 한창이다. 어쩌다가 글쟁이로 살다 보니 1년에 두어 달 이상씩은 여행을 하면서 보내게 된다.
딱히 뚜렷한 직업이 없는 나로서는 비교적 남들보다 동선이 자유롭다. 원고작업에 골몰하다 보니 여행이란 것이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라기보다는 어떤 내면의 불가피한 선택과 집중에 따른 결과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직까지는 비감한 기분으로 노트북과 원고뭉치를 챙겨들고 떠났던 기억이 더 많은 걸 보면 앞으로도 남들처럼 휴가기분으로 여장을 꾸리기는 쉽지 않을 성 싶다. 주변에선 툭하면 여행을 떠나는 낭객처럼 비쳐졌는지 이맘때쯤 되면 질문 중 가장 많은 것이 좋은 여행지 추천이나 여행 때 들고가는 책목록 등이다. 그때마다 사실 나는 조금 난감하고 어리둥절해질 때가 많다.
여행이란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면서 동시에 가장 개별적인 방식이기도 해서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춰도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복불복이니 그냥 알아서 겪으시오'라고 빈정대기도 뭐해서 주섬주섬 멋쩍은 경험담을 늘어놓을 때가 많지만 사실 그건 내 생각을 어떤 채널로 변경해도 좀처럼 답을 구하기 힘든 여행의 정의 때문이다.
사실 여행의 정의를 내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보들레르는 여행의 정의를 '떠나기 위한 떠남' 이라고 말했다. 어떤 작가는 여행의 단계를 처음엔 떠나온 곳을 잃고,그 다음엔 장소와 시간을 잃고,가장 마지막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표현들 속에는 진정한 여행이란 목적지를 잃는 것이며 그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말하려는 제스처가 감춰져 있다.
여행의 '정의할 수 없음'에는 이렇듯 '그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음'에 분명한 '목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셀트루니에가 말한 '나쁜 여행', 즉 한 바퀴 돌고 오는 '관광'은 여행의 목적을 쉽게 들키기 때문에 의미가 사라진다는 설득력을 얻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특정한 목적지나 특정한 경험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의 방식에서부터 개별성을 얻고 설득력을 얻어간다. 여행의 진정한 알리바이는 항상 자신 안에 존재하는 광장과 밀실 사이의 거리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납세방식처럼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지불해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에게 일부러 부여하는 시간의 과세도 아니다. 여행은 누구하고도 상관없이 진행되는 오로지 자신과 관계하는 자발적인 동기이다. 여행을 통해 경계가 사라지고 경계가 지워지는 심상의 행위를 경험해 보았다면 -그것이 분명 여행의 의미에 조금 다가간 것인지도 모른다는- 우리들의 믿음이 지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여행의 노트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먼저 지도를 잃기를 바라고 도시와 골목에서 마음껏 헤매기를 권한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리둥절함과 현기증이 우리 내면에 얼마나 커다란 다른 삶을 제공받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자신이 중얼거렸던 낯선 언어가 가장 중요한 삶의 진실을 이해해 가고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고백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는 주인을 품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주인에게로 가서 끊임없이 다른 여행을 제공하는 인간의 영원한 알리바이일지도 모른다. 그 말은 결국 여행이란 내가 가진 경험으로 보편을 이해해가는 방식일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보편이 특정한 경험에서 다른 상대성을 얻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김경주 < 시인ㆍ극작가 >
딱히 뚜렷한 직업이 없는 나로서는 비교적 남들보다 동선이 자유롭다. 원고작업에 골몰하다 보니 여행이란 것이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라기보다는 어떤 내면의 불가피한 선택과 집중에 따른 결과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직까지는 비감한 기분으로 노트북과 원고뭉치를 챙겨들고 떠났던 기억이 더 많은 걸 보면 앞으로도 남들처럼 휴가기분으로 여장을 꾸리기는 쉽지 않을 성 싶다. 주변에선 툭하면 여행을 떠나는 낭객처럼 비쳐졌는지 이맘때쯤 되면 질문 중 가장 많은 것이 좋은 여행지 추천이나 여행 때 들고가는 책목록 등이다. 그때마다 사실 나는 조금 난감하고 어리둥절해질 때가 많다.
여행이란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면서 동시에 가장 개별적인 방식이기도 해서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춰도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복불복이니 그냥 알아서 겪으시오'라고 빈정대기도 뭐해서 주섬주섬 멋쩍은 경험담을 늘어놓을 때가 많지만 사실 그건 내 생각을 어떤 채널로 변경해도 좀처럼 답을 구하기 힘든 여행의 정의 때문이다.
사실 여행의 정의를 내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보들레르는 여행의 정의를 '떠나기 위한 떠남' 이라고 말했다. 어떤 작가는 여행의 단계를 처음엔 떠나온 곳을 잃고,그 다음엔 장소와 시간을 잃고,가장 마지막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표현들 속에는 진정한 여행이란 목적지를 잃는 것이며 그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말하려는 제스처가 감춰져 있다.
여행의 '정의할 수 없음'에는 이렇듯 '그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음'에 분명한 '목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셀트루니에가 말한 '나쁜 여행', 즉 한 바퀴 돌고 오는 '관광'은 여행의 목적을 쉽게 들키기 때문에 의미가 사라진다는 설득력을 얻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특정한 목적지나 특정한 경험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의 방식에서부터 개별성을 얻고 설득력을 얻어간다. 여행의 진정한 알리바이는 항상 자신 안에 존재하는 광장과 밀실 사이의 거리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납세방식처럼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지불해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에게 일부러 부여하는 시간의 과세도 아니다. 여행은 누구하고도 상관없이 진행되는 오로지 자신과 관계하는 자발적인 동기이다. 여행을 통해 경계가 사라지고 경계가 지워지는 심상의 행위를 경험해 보았다면 -그것이 분명 여행의 의미에 조금 다가간 것인지도 모른다는- 우리들의 믿음이 지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여행의 노트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먼저 지도를 잃기를 바라고 도시와 골목에서 마음껏 헤매기를 권한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리둥절함과 현기증이 우리 내면에 얼마나 커다란 다른 삶을 제공받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자신이 중얼거렸던 낯선 언어가 가장 중요한 삶의 진실을 이해해 가고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고백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는 주인을 품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주인에게로 가서 끊임없이 다른 여행을 제공하는 인간의 영원한 알리바이일지도 모른다. 그 말은 결국 여행이란 내가 가진 경험으로 보편을 이해해가는 방식일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보편이 특정한 경험에서 다른 상대성을 얻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김경주 < 시인ㆍ극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