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시한폭탄' LH] (2) 미분양 뻔한데 '1기 신도시 8배' 공사…정치권 압박에 중단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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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묻지마 택지개발
16일 오후 인천 중구 중산동 '영종하늘도시' 입구.영종 우미린 아파트 공사현장을 지나 한참을 달려도 가건물 외에 번듯한 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2007년 이후 7개 필지에서 아파트를 분양했지만 모델하우스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LH 영종지구 제1공구'라는 팻말과 멈춰선 크레인만 눈에 띌 뿐이었다.
부지조성공사로 벌건 속살을 드러낸 사업 현장과 아직 파헤치지 않은 논밭이 '개발이 멈춘 도시' 같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매각한 52개 아파트 용지 중 20개가 계약 해지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했다.
◆마구잡이 신도시 개발의 '후폭풍'
영종하늘도시에선 작년 이후 총 8009채의 아파트가 분양됐지만 40%가량이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윤종만 영종하늘도시공인 공인중개사는 "인근에 장볼 곳도 없고 영화 한편 보려 해도 인천대교를 건너가야 하니 실수요자들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사는 "계약자들이 대부분 서울과 인천 구도심에서 건너온 투자자들이어서 여차하면 분양권을 팔 수 없을까 안달"이라며 한숨 지었다.
정부와 LH가 수도권 곳곳에서 추진한 '묻지마 택지개발'의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집값 버블'을 잡겠다며 2000년대 중반 이후 판교 동탄 김포 등 2기 신도시와 택지지구, 경제자유구역을 잇달아 선정하고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헤친 탓이다. 2기 신도시를 비롯한 전국 택지지구 162곳의 아파트 계획물량은 총 232만채에 이른다.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29만채의 8배 물량이다. '버블 붕괴' 논란이 벌어지는 지금도 신도시 개발은 감속되기는커녕 여전히 같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영종하늘도시보다 더 심각한 곳은 김포한강신도시다. LH가 분양한 58개 블록 중 11개가 시행사 등의 요구로 해약된 데 이어 S건설,C건설 등이 매입한 6개 블록에서도 해약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17개 블록을 모두 합하면 토지대금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LH는 추산하고 있다. 2012년 완공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2기 신도시는 사업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경기 옥정신도시가 대표적인 예다. LH가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로 나뉘어 있던 시절,양사가 택지개발 경쟁을 벌여 과도하게 택지규모를 부풀린 것이다. 2005년 토지공사가 양주시 옥정지구를 개발하자 주택공사도 바로 인근에 회천지구를 지정,신도시 개발에 나섰다. 옥정지구는 3만7000채를 계획했으나 회천지구가 가세하면서 양주신도시는 총 5만9000채 규모로 불어났다. 이로 인해 입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옥정지구 29개 블록 중 절반가량이 4년간 팔리지 않았다.
LH가 추진 중인 전국 혁신도시의 택지개발도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10개 혁신도시로 이전할 공공기관 직원 수는 약 4만8000명으로 추정된다. 혁신도시가 수용하겠다는 인구인 27만3000명의 5분의 1도 안된다. LH는 부산을 제외한 9개 혁신도시에서 9만5300채의 아파트 용지를 공급키로 하고 택지를 분양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혁신도시 아파트 용지는 30~40%밖에 팔리지 않아 LH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국토해양부 고위 관계자마저 "혁신도시는 기존 지방광역시 바로 인근에 조성돼 초기에는 '불꺼진 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혁신도시의 아파트 용지를 줄이는 게 합리적"이라고 정책미스를 자인했다.
◆근시안적 공급 부족 예측이 발목 잡아
LH의 택지개발 '부실'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은 국가사업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행할 수밖에 없었던 데 1차적 원인이 있다.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집값을 잡기 위해 신도시 개발을 남발한 정부 책임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임대주택 100만채 공급 등 과도한 물량 중심의 목표 달성을 추진해온 결과가 부동산경기 침체와 맞물려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한꺼번에 주택을 늘려야 한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전국 주택보급률(1인 세대 포함)은 101%로 100%대를 넘겼지만 수도권 주택보급률은 2005년 96.0%에서 작년 95.4%로 오히려 줄어들어 지방과 달리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만희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민간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공급하지 않고 있다"며 "공공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급 감소분을 메워줘야 2~3년 뒤 아파트 부족난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주택 확대 정책은 달라진 시장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그동안의 관성을 이어가려는 행태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동산관리회사인 A플러스의 김용길 이사는 "세계 부동산시장의 하향 동조화가 진행 중"이라며 "국내에서도 부동산 불패신화가 꺾이고 대세하락 논쟁이 벌어지는 만큼 주택공급 부족 해소에 방점을 두는 정책을 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장규호/인천 영종=성선화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