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의심할때 미래 내다 본 '구본무의 20년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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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2차전지 글로벌 선두기업 질주 비결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취임 6년째를 맞던 2001년 11월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30층 대회의실.구 회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주요 투자결정을 내리는 모임을 가졌다. 주요 의제 중 하나로 LG화학이 추진하고 있던 2차전지 사업이 포함돼 있었다. 일부 경영진은 "일본 산요 등 세계적 전자회사들이 2차전지 기술개발에 한참 앞서 있는데 적자를 감수하며 사업을 계속해야 하냐"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 당시 LG화학이 2차전지 사업에 손을 댄 것은 이미 8년째였다. 1993년부터 독자 개발에 착수,1999년 첫 제품을 선보였지만 일본 제품들의 경쟁력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에너자이저 듀라셀 등 세계적인 1차전지 업체들조차 2차전지 기술개발에 두 손을 들고 시장에서 철수한 상황이었다. 참석자들의 열띤 공방이 오간 뒤 구 회장은 갑론을박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길게 봐라.그간 쌓아온 기술 노하우를 생각할 때 연구 · 개발(R&D)에 계속 투자하는 게 맞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반드시 기회는 찾아올 것이다. "
◆"2차전지에 그룹의 미래가 있다"
전기자동차용 중 · 대형 2차전지 분야의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떠오른 LG화학의 성공 배경에는 구 회장의 20년 가까운 집념이 자리잡고 있다. LG화학이 10년 먼저 사업을 시작한 일본 경쟁업체들을 제치고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구 회장의 뚝심 경영이 주효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2차전지 사업 추진에 대한 논란은 2001년에 이어 2006년 말 또 한번 불거졌다. 그해 LG화학이 2차전지 사업부문에서 2000억원에 가까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자 그룹 내부에서는 "그것 봐라"며 회의적인 시각이 다시 대두됐다. 이때 역시 구 회장은 "끈질기게 하다 보면 성공할 날이 올거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며 임직원들을 다독였다는 후문이다.
구 회장은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자주 2차전지 얘기를 꺼낸다. 지난 2월 경기도 이천 인화원에서 열린 전무 승진자 교육에서도 "20여년 전 시작한 2차전지 사업을 중도에 포기하려 했지만 결국 끝까지 도전했고 이제서야 빛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기술 자립을 못하면 기술을 가진 기업에 수모를 당하게 된다"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되려면 1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R&D를 꼭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발 앞선 시장 예측 적중
LG화학은 2001년 3월 미국 콜로라도에 중 · 대형 전지 연구개발 현지법인인 컴팩트파워(CPI)를 설립하며 일찌감치 전기차용 중 · 대형 2차전지 개발에 뛰어들었다. 노트북 휴대폰 등에 들어가는 소형 2차전지 분야에선 일본 업체에 비해 기술개발이 늦었지만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에선 경쟁사들과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CPI 대표에 미국 GM의 최초 전기자동차 'ECV1'의 엔진설계를 총괄한 다니엘 리버스 박사를 스카우트했다. 작년 1월 전기차 배터리 공급의 첫 물꼬를 튼 GM과의 계약은 이 같은 전략적 결정과 한발 앞선 시장 예측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전기차 분야의 2차전지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하며 중 · 대형 2차전지 기술개발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며 "GM과의 공급계약 실적이 이후 볼보 포드 창안자동차 등 추가 계약을 맺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