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 뜨는 일은 나에게 명상의 시간으로 활용된다. 가끔씩 무릎이 시려 고생하시는 할머니께 무릎 주위 혈자리 5곳에 쑥뜸 7장을 떠드리곤 한다. 뜸 치료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나는 주로 피부에 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간접뜸법을 활용한다. 뜸을 뜰 땐 뜸쑥이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할머니가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 너무 뜨거워지기 전에 뜸쑥을 재빨리 떼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뜸을 놓는 동안 마음이 고요해진다. 잡념도 사라지고 숙연해진다. 따뜻한 쑥의 열기가 골고루 퍼져나가 아픔이 치유되기를 기도하는 마음,환자와 나의 기운이 소통되는 것을 느끼는 이 시간은 명상을 할 때처럼 평화롭다. 한의학 치료는 정성이 반을 차지한다고 배웠는데,시술하는 동안 환자와 기를 교감하는 몰입의 시간이 충분할수록 치료효과도 커진다.
여름은 한의학적으로 뜸이 필요한 계절이다. 몸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땀으로 배출하기 위해 피부로 기운이 몰려 인체 내 복부 장기는 차가워지게 된다. 속이 냉해지기 쉬운 여름철 생활습관이 장기화되면 가을,겨울에 호흡기 질환을 앓기 쉬우므로 예방책으로 뜸이 좋다는 뜻이다.
얼마 전 충남 대천 앞바다 삽시도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이틀 동안 짙은 안개로 여객선이 결항됐지만 마을 노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섬 마을에 고립되는 것을 감수하고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섬에는 보건진료소가 있지만 서양의학을 전공한 공중보건의만 근무 중이다. 당연히 마을 노인들은 대환영이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분들께 침을 놓고,뜸을 뜨고 분주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참 동안 환자들을 돌보는데 한 어르신이 자주 올 수 없으니 혈자리를 알려달라고 통사정을 하신다.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신다기에 합곡혈을 알려드리려는데,내 손등의 점을 보고 똑같이 표시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삽시도 어르신들이 좋아한 뜸 치료는 도시의 직장생활에 지쳐 있던 나에게도 새로운 청량제가 되었다. 부서원들과의 소통 문제 등이 뒤엉켜 복잡했던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졌으니 말이다. 환자도 한의사도 쑥뜸을 매개로 감사한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만드는 것이 뜸의 매력이다.
최선미 한국한의학연구원 본부장 smchoi@kio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