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어를 할 수 있는 졸업 예정자 없나요?" 최근 에스토니아에 의류 수출을 모색하던 KD물산의 김덕중 사장(45)은 에스토니아어 가능자를 긴급하게 찾았다. 김 사장은 한국외대에 문의해 봤지만 에스토니아 전공이 없어 가르치지 않는다는 답만 들었다. 에스토니아는 내년 1월 유로존에 가입할 예정이어서 김 사장은 이참에 에스토니아에 거래처를 뚫어볼까 생각 중이지만 언어나 문화를 아는 사람이 없어 고민 중이다.

한국외국어대가 김 사장 같은 사례를 줄이기 위해 특수지역 언어 전공자를 배출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정부가 검토조차 제대로 안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국외대는 지난 5월 '특수외국어 교육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2013년까지 순차적으로 캄보디아 · 미얀마 · 라오스 · 벵골 · 마케도니아 · 알바니아 · 리투아니아 ·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어과 등 9개 전공을 추가할 계획이었다. 한국외대는 이렇게 해서 언어 전공 수를 현재 45개에서 54개로 늘려 러시아 무기모대(53종)를 제치고 프랑스 이날코대(93개)에 이어 '외국어대 세계 2위'로 올라서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18일 한국외대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과 신설안에 대해 2개월 넘게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행정 처리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당초 목표로 했던 내년 출범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학교 측은 학과를 개설하고 송도캠퍼스에 '전략언어연구원'을 설립하는 데 약 32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정부가 국책사업을 통해 간접 지원해줄 것을 제안했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은 "소수 언어는 외교 · 경제 측면에서 가치가 높지만 수요는 적어 사립대가 자력으로 모든 재원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등록금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정부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외대 측은 전공을 개설하려 했던 지역 중에 신흥 개발국으로 촉망받는 나라들이 많다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캄보디아 · 라오스 · 리투아니아는 최근 대대적인 경제 개혁과 투자 유치에 나섰고 발트 3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는 내년 1월 유로존에 정식 가입한다. 기존의 체코 · 폴란드 · 헝가리 · 루마니아어 등도 삼성 ·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동유럽 진출과 맞물려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어의 경우 공산국가 시절 '변두리 언어'로 외면받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인력 양성이 이뤄졌고 베트남 경제가 개방된 뒤 거의 모든 졸업생이 정부와 기업의 해외 파트로 진출하며 빛을 발했다.

해외 비즈니스 지원을 위해 특수언어 전공자를 채용하고 있는 KOTRA의 이희상 인사팀 차장은 "특수언어 전공자는 대부분 해당 지역 연수 경험이 있어 현지 문화에도 능통하고 업무 적응이 빠르다"면서도 "이를 가르치는 대학이 한국외대,부산외대,명지대 정도라서 인재 풀이 좁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중 서양어대학장(네덜란드어과 교수)은 "특수언어 전문가를 잘 활용하는 기업은 영어로는 접근할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며 "세계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기업을 위해서라도 특수언어 전공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