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대한의학회와 보건산업진흥원 주최로 서울 한 호텔에서 '의료기술2010' 포럼이란 의미있는 모임이 열렸다. 관계부처 장관,국회의원,병원,제약기업,관련 정부부처 담당자들이 모여 우리나라 의료산업 발전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주제발표는 민간 경제연구소의 입을 빌려 했지만 보건복지부의 의료기술발전을 위한 세부 방안까지 모두 포함됐다.

그 동안 정부는 병원의 역할을 단순히 진료서비스를 모든 국민한테 제공한다는,즉 국민개보험 구현이라는 1차적 정책목표 맞추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대형 병원들에 대한 잠재력을 무시해 왔다. 이에 비해 선진국에서 대형 병원이 의료산업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정책적 오류를 깨달은 정부는 최근 들어 연구중심의 선도병원 육성 없이는 의료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판단,병원의 연구능력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발전전략이 성공하려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몇가지 조건들이 있다.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접근하면서 막대한 재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포럼에서 제안된 계획에 따르면 신약을 비롯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정부가 중심이 돼 앞으로 10년 동안 16조원 이상을 연구비로 투입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다국적제약기업들이 연간 50억~60억달러를 투입하고도 신약을 연간 두세 개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관련 산업계에서 그 몇 배의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규모로 보면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는 제약업계나 의료기술업체들은 과감한 기업 인수 · 합병(M&A)을 통해 매년 수백억~수천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만 국제무대로 나갈 수 있다.

둘째, 정부가 인내심을 가지고 기초연구에 더 많은 규모로 투자해야만 관련 인력양성이나 지식재산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창의적 경제시대에는 최고의 기초연구결과가 최고의 상품이 될 수 있고 더욱 중요한 점은 기초과학능력은 제조업처럼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1953년에 생명과학분야의 빅뱅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 구조를 밝혀낸 뒤에도 우주개발투자 못지않게 막대한 연구비를 인체 게놈프로젝트 등 기초과학에 쏟아부어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을 자국으로 유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생명과학산업에서도 선두주자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셋째, 관련 분야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인재양성을 위해 대학을 대상으로 한 투자와 의료산업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병원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병원들이 단지 저렴한 건강보험 수입에 의존하게 해서는 점점 경쟁력을 잃어갈 뿐이며 의료발전의 구심점 역할도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전략을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세금으로 조달하는 연구비 외에도 다른 산업처럼 보건의료산업 분야에도 다양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규제틀을 거두어야 한다. 즉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해 병원업계가 의료보험수입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양과 질에서 국제적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경영기반을 갖추도록 유도해야 하고 연구개발에도 적극 투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제약업계나 의료기기 업체들도 구조조정이나 기업결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영세성을 극복해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산업발전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는 산업생태계가 마련될 수 있다.

이제호 성균관대 의대 교수 / 분자치료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