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에서 저가 항공회사인 아줄(AZUL)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008년 12월 영업을 시작한 새내기 항공사이지만 6월 브라질 항공시장 점유율이 5.7%다. 영업 시작 12개월 동안 수송한 승객이 220만명에 이른다. 미국의 저가 항공사인 젯블루가 보유한 세계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젯블루가 영업을 시작한 지 10개월10일 만에 100만명의 승객을 날랐던 데 비해 아줄은 8개월 만에 이 기록을 달성했다.

데이비드 닐리만 아줄 최고경영자(CEO · 51)는 최근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천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해 1억5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는데 올해는 3억달러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1998년 젯블루를 세워 미국에 저가 항공 바람을 일으킨 닐리만 CEO의 '속도 경영'이 모델로 자리잡지 않았다면 아줄이 이런 경영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잠자는 수요 공략으로 시작

39세 때 젯블루를 창업해 미국 내 8위 항공사로 키운 닐리만은 2007년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났다. 얼음 폭풍이 왔을 때 활주로에서 발이 묶인 고객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데다 이사회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탓이다. 그런 그가 아줄을 창업하려고 하자 주위에서는 미친 행동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앞서 10년 동안 항공산업은 투자자들에게 최악의 수익을 안겨준 업종이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이 워낙 치열해 그 기간 중 미국 대형 항공회사들이 본 손실액이 600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브라질 태생으로 현지 사정에 밝은 닐리만은 젯블루에서 쫓겨나자마자 현지 시장조사에 나섰다. 연간 비행기를 타는 고객 규모가 1억5000만명은 돼야 하는 곳인데 고작 5000만명이 비행기를 탄다는 점을 알게 됐다. 미국에서 인구 6만5000명당 비행기 1대가 운항되는 데 비해 브라질은 100만명당 1대에 불과했다. 그는 이유를 곰곰 따져봤다. 브라질의 기존 항공사들은 주로 대형 비행기를 이용해 대도시 중심으로 운행했다. 소도시를 논스톱으로 잇는 서비스가 태부족했다. 그런 만큼 항공료도 비싸 서민들은 이용할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였다.

브라질에서 생산하는 중소 비행기(Embraer)를 활용해 30일 전,혹은 21일 전 예약 방식으로 영업을 하면 버스 요금 수준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브라질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잠자는 항공 수요를 끌어낼 자신감이 있었다. 아줄을 설립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2억3500만달러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뚜렷한 사업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젯블루를 창업할 때보다 4배가량 많은 1300만달러를 투자했다.

◆친근한 고객 서비스부터

항공산업은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이다. 고객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1990년대 초 사우스웨스트항공에서 5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는 닐리만은 젯블루 경영을 통해 고객의 마음을 붙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성질 급한 그는 자신이 직접 상파울루주 캄피나스에서 포르투 알레그레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해 마이크를 잡고 포르투갈어로 "전에 아줄을 탄 사람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고객의 눈을 끌 수 있는 익살을 부려 고객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올해 말까지 좌석 공간을 넓히고 TV도 설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 손익 개념보다 고객 편의를 중시해야 한다. 아줄을 타는 고객 상당수가 승용차가 없는 데다 대도시의 택시비는 비싸다는 점을 감안,상파울루와 5개 도시 공항 인근에 무료 버스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재무팀에서 수지관리를 위해 1인당 10달러씩 요금을 받아야 한다고 제안했지만,닐리만은 무료 서비스를 고집했다.

연료 효율이 높은 18대의 비행기로 22개 노선에 하루 134회를 운항하고 있는 아줄은 올해 승객 500만명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닐리만은 "낮은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수요는 얼마든지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료주의는 어떤 경우든 철저히 배제

닐리만은 자신이 몸담았던 사우스웨스트의 허브 켈러허 CEO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켈러허 CEO는 "주주 중심의 경영을 하지 말고 직원을 먼저 생각하라"며 "직원들이 고객을 잘 모시면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들이 주주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닐리만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이를 금과옥조로 삼았다.

직원 만족을 위해 경영진에 대한 특전이나 관료주의를 철저히 배제했다. 자신은 스톡옵션 없이 연봉으로 20만달러만 받는다. 상파울루 서부 지역에 있는 아줄 본사는 임직원들에게 주차장도 추첨을 통해 배정한다. 먼 곳에 주차장을 배정받은 고위 임원이 불평하면 닐리만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더 이상 승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사내 권위주의를 철저히 배제하면서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예정된 정기 이사회가 열릴 때 말고도 수시로 이사진들과 만나 경영 현안을 논의한다.

◆경영 성패는 속도가 좌우

아줄 경영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다. 현재 브라질산 비행기(Embraer jets) 18대를 보유하고 있는 아줄은 최근 17억달러를 투입해 추가로 28대의 항공기를 추가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닐리만은 "항공사 경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낮은 가격에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자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브라질 공군 대위 출신 미겔 다우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경영을 마치 군사 작전처럼 하고 있다"며 "이렇게 단시일 내 사업 규모를 키운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닐리만은 속도경영을 위해 빠른 물류로 정평이 나 있는 스페인 의류회사 자라에서 브라질 사업부문을 이끌어온 페드로 자노를 영입하기도 했다.

닐리만은 "직원과 고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영을 하면 어떤 시련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며 "속도 경영 성과가 아줄의 경영실적을 통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