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 미아동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박상진씨(43)는 초등학교 5학년 딸의 교육을 위해 강남 8학군으로 옮기려 했으나 최근 포기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요식업 불황 때문이다. 모아 놓은 돈은 없는데 미아동 전용 85㎡ 아파트는 팔리지 않고 전세로도 나가지 않아서다.

#2.서울 상도동에 거주하는 양지수씨(37)는 얼마 전 전셋집을 알아보러 대치동에 들렀다 깜짝 놀랐다. 부동산 정보업체는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셋값이 오르고 매물도 없다'고 얘기했지만 계약 후 바로 입주 가능한 매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 특수가 시작되는 6월 한 달 반짝 올랐던 전셋값도 내림세였다.

강남 8학군 대표 지역인 대치동 일대 아파트들의 전셋값이 약보합세다. 여름 방학과 가을 이사철을 앞둔 6~7월이면 오르던 예전과 달리 매물도 늘고 있다.
'8학군' 수요 사라진 대치동 전셋값 하락
◆강북권 및 지방 이주자 감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대치동 전셋값 약세와 관련,주택 경기 및 체감 경기 침체로 대치동으로 옮겨오던 서울 강북권과 지방 거주자가 줄었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택시장 침체로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고 전세도 나가지 않아 대치동 전세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가 줄면서 대치초등학교와 대청중학교 사이에 있어 대치동에서도 학군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개포우성1차 102㎡는 4억5000만~5억2000만원으로 보름 사이 1000만원가량 전셋값이 떨어졌다. 쌍용1차 153㎡는 4억5000만~5억5000만원,176㎡는 5억5000만~6억5000만원으로 이달 들어서만 각각 1500만원과 1000만원 정도 내렸다. 인근 은마아파트도 같은 기간 전세 수요가 줄면서 매물이 쌓여 500만~1000만원 정도 하락했다. 101㎡는 2억4000만~2억9000만원,112㎡는 2억7000만~3억2000만원 선이다.

대치동 일대는 강남권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학군 및 학원 수요가 꾸준해 여름 방학을 앞두고 강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현상은 이례적이다. 개포우성1차 단지 내 H공인 관계자는 "예전엔 강북의 집을 팔면 그만한 규모의 대치동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올 상반기 강북 집값은 내리고 강남 전셋값은 올라 이 같은 이동이 어려워졌다"며 "강북권과 지방 거주자의 전화 상담도 예년에 비해 30% 정도 줄었다"고 전했다.

◆새 아파트도 전셋값 하락 압력
'8학군' 수요 사라진 대치동 전셋값 하락

대치아이파크와 동부센트레빌 등 대치동의 새 아파트도 전셋값 하락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동부센트레빌 175㎡는 10억~11억원으로 지난달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세매물이 점차 늘어나면서 10억원대 초반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단지 내 D공인 관계자는 "새 아파트여서 다른 단지에 비해 물건이 많지 않아 전셋값이 그나마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요가 예전같지 않아 언제까지 이 가격대를 유지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큰 평형으로 옮겨가려는 수요가 줄어든 것도 대치동 내 전세수요를 감소시키며 전셋값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주철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대치동은 자녀 교육을 위해 전세로 사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며 "이들은 자녀의 성장에 따라 30평형대에서 40평형대로 옮겨가는 경향도 강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움직임이 둔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