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는 조물주가 꼼꼼히 만들어놓은 창조물이지만 주인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다 쓰기도 전에 탈이 나게 된다. 고지혈증은 신진대사 이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생활습관병으로 방치하면 혈관에 기름찌꺼기 등 노폐물이 쌓여 동맥경화가 진행되고 혈관을 좁히거나 막음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신진대사 이상은 아무런 증상이 없기 때문에 조기발견과 대처에 신경써야 한다.

어원을 보면 콜레스테롤은 담즙(chole-)을 딱딱하게(stereo-)만드는 덩어리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1769년께 담석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될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이기도 하다. 호르몬을 만들거나 세포의 껍질을 형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며 뇌,신경의 중요 성분이다.

체내 콜레스테롤은 통틀어 30~40g에 불과하다. 하루에 간에서 1g을 만들고 섭취하는 양은 계란 한두 개 분량인 200~300㎎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은 대부분 대변으로 빠져나가는 양을 벌충하는 데 쓰인다. 콜레스테롤은 간에서 합성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콜레스테롤은 대부분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세포들이 알아서 만들어 충당한다고 보면 된다.

현대의학 덕분에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측정할 수 있게 됐으며 이 수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혈관벽 속에 플라크(Plaque)라는 지방덩어리가 침착돼 동맥경화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게 입증됐다. 궁핍의 시대를 건너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콜레스테롤은 사람을 죽이는 크나큰 그림자를 드리우게 됐다. 고지혈증으로 인한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등으로 미국 대통령 15명이 생명을 잃었고 한국인 5명 중 1명도 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콜레스테롤은 무엇이든(특히 포화지방산) 너무 많이 먹거나,운동량이 부족하거나,체중이 늘거나,담배를 피우거나,과음하면 수치가 높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 급증하는 당뇨병도 큰 위험요인이다. 간이 이런 요인들에 지치면 콜레스테롤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유전적인 대물림으로 콜레스테롤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신장이나 갑상선의 기능이 떨어지거나,호르몬 성분의 약(남성호르몬 여성호르몬 피임약)을 복용할 때 수치가 높아지기도 한다.


콜레스테롤 중에도 고밀도지단백(HDL)과 결합한 콜레스테롤은 몸에 '좋은' 것으로 분류돼 이들은 오히려 몸이나 혈관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청소해준다는 게 최근에서야 대중에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HDL-콜레스테롤은 높은 수치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이에 반해 주로 혈관에 쌓여 문제가 되는 콜레스테롤은 몸에 '해로운' 저밀도지단백(LDL) 결합 콜레스테롤이다.

국내서는 콜레스테롤 외에도 중성지방(triglyceride)의 과잉 섭취가 문제가 되고 있다. 유전적으로 외국인들에 비해 다소 높은 것도 문제이지만 한국 특유의 탄수화물 과잉섭취,과음,높은 흡연 등도 고중성지방혈증의 주범이다.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고콜레스테롤혈증과 고중성지방혈증의 유병률은 각각 10.9%와 17.3%로 나타났고 지난 5년간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다른 만성질환들에 비해 빠른 증가 속도를 보였다. 더욱이 한국 성인의 경우 좋은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충분히 높지 않은 비율이 30~40%에 달한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고지혈증이란 말 대신 LDL-콜레스테롤이 높은 경우,중성지방이 높은 경우,HDL-콜레스테롤이 낮은 경우 등 비정상적(이상) 상태를 통틀어 '이상지혈증'이란 용어를 쓴다. 고지혈증은 전날 저녁까지만 식사하고 굶은 상태에서 혈액검사를 하면 쉽게 진단할 수 있다. 남성은 45세,여성은 55세 이상의 중년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체크해봐야 한다. 특히 여성은 폐경기 이후 고지혈증이 빠르게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고혈압 당뇨병을 앓거나,담배를 피우거나,배가 불룩한 경우(남성은 허리둘레가 35인치,여성은 31인치 이상)라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최소한의 콜레스테롤 기준은 LDL-콜레스테롤 130㎎/㎗미만,HDL-콜레스테롤 40㎎/㎗이상이다. 이미 심혈관계질환을 앓았거나 당뇨병을 비롯한 다른 위험인자들이 많을수록 LDL 수치는 더욱 낮은 100㎎/㎗미만으로 유지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중성지방은 최소한 250㎎/㎗미만으로 관리해야 한다.

현재까지 LDL-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게 가장 쉽고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일반적으로 LDL-콜레스테롤이 10% 감소하면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20% 정도,심근경색 발생률은 17%가량 낮아진다. 정상적인 지질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 꼭 약물을 복용할 필요는 없다. 야채나 과일,정제되지 않은 곡물 위주로 먹는다. 붉은 육류는 소량만 섭취하고 포화지방산 등 나쁜 지방은 적게,불포화 지방산 등 좋은 지방(올리브기름, 카놀라기름 등)은 적당히 섭취토록 한다. 심장질환이 없다면 1주일에 3회 이상,하루 30분 정도 규칙적인 유산소운동이 도움된다.

그러나 이런 생활수칙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약을 먹지 않고 생활습관개선을 통해 고지혈증을 치료하겠다며 증상만 악화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아토르바스타틴 로바스타틴 로수바스타틴 심바스타틴 등 스타틴 계열의 약물을 복용해 LDL-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게 현명하다.

스타틴계 약물로 LDL-콜레스테롤을 30% 떨어뜨린다면 뇌졸중을 포함한 심혈관계질환의 발생을 30%가량 줄일 수 있다는 게 연구로 입증돼 있다. 고지혈증을 비롯한 고혈압 당뇨 등과 같은 대사이상질환들을 잘 관리한다면 5년 이상의 건강한 삶을 보너스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기훈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