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스님 혜초(704~787)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오는 12월18일 개최하는 '실크로드와 둔황'(가칭) 특별전에 전시하기로 했다. 두루마리 족자에 필사한 이 한 권의 여행기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최초로 일반인에게 전시를 통해 공개되는 것이라고 한다. 반가운 마음이 이는 한편 분노가 새삼스레 치밀어 오른다. 프랑스가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를 이것 하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범한 프랑스 함대의 로즈 제독은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서책 1000여 종 6000권 중에서 200여 종 340권을 가져갔다. 로즈 제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병사들을 시켜 강화부의 궁전들과 외규장각 건물을 불태웠다. 이 와중에 나머지 책들이 한 권 남김없이 불태워졌다.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관련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한국의 문화연대는 작년 12월 "프랑스 정부가 외규장각 도서의 약탈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황평우 문화연대 위원장에 따르면 프랑스 측이 외규장각 도서와 관련해 '약탈'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 의미가 매우 커 향후 판결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외규장각 도서가 합법적으로 자국의 소유이기에 반환이 불가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반환'의 판례를 남기면 각국에서 소송을 제기,루브르 박물관이 텅 비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왕오천축국전》은 '다섯 천축국(인도)을 여행한 기록'이라는 뜻이지만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포함,총 40개국을 여행하면서 쓴 기록물이다. 현존하는 여행기는 앞뒤가 훼손된 한 권의 두루마리로 된 필사본이며 총 227행으로 남아있는 글자는 5893자이다. 크기는 세로 28.5㎝,가로 42㎝인 종이 아홉 장을 이어 붙였는데,첫 장과 마지막 장이 각각 가로 29.35㎝여서 총 길이는 358㎝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13세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14세기 《이븐 바투타 여행기》보다 훨씬 앞서 나왔다.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정치 · 경제 · 문화 · 풍습 등을 알려주는 세계의 유일한 기록으로 그 가치가 높다.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프랑스의 탐험가 폴 펠리오(1878~1945)가 구입한 중국 둔황의 막고굴(莫高窟) 장경동 석굴에서 발견한 문서 속에 포함돼 있었다. 펠리오는 1908년 2월 둔황에 도착해 5월 말까지 머물며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원록에게 책자 24상자 1500여권과 그림 · 직물류 다섯 상자를 헐값에 사서 프랑스로 보냈다. 그는 1909년 5월21일 일부 고서를 중국 학자들에게 공개했고,그해 12월10일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발견에 대해 보고했다. 1915년에는 일본의 다카구스 준지로에 의해 혜초가 신라의 승려임이 밝혀졌다.

《왕오천축국전》은 727년 혜초에 의해 완성된 이후 1180여년 만에 빛을 본 귀중한 책으로,국립중앙박물관의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을 통해 한국인에게 장장 1283년 만에 공개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전시가 끝난 뒤 《왕오천축국전》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겠지만 반환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중단되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가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피해는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책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주도 이재수의 난 등에서도 알 수 있듯 제국주의적 침략의 역사가 전개됐다. 서책 강탈과 제주도에서의 잘못에 대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적이 없는 프랑스이다. 프랑스가 예술을 숭상하는 나라라면 우리나라에서 빼앗아간 외규장각 도서부터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