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변화는 직선적이지 않다. S자처럼 곡선을 그린다. 기업이 새로운 상품을 출시할 때를 생각해보자.신상품개발비, 마케팅비 등 돈을 쏟아부어도 매출이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광고가 전달되고 인지되고 그것이 판매로 연결될 때까지는 매출부진이 계속된다. S자의 아랫면처럼 지루한 횡보가 계속되다 어느날 갑자기 고개를 든다. 이 지점을 변곡점 또는 티핑포인트라고 부른다. 여기에 도착하면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 성과를 내면서 매출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주머니가 깊은 대기업들이 유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지간한 규모의 투자는 감당할 여력이 있기 때문에 초기에 보이는 손해를 감내하고 결국 과실을 따먹게 돼 있다. 경영학에서는 회사나 조직의 변화를 얘기할 때 일정한 시간과 비용,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S커브를 자주 인용한다.

예를 들면 조직혁신에 드라이브를 걸 때도 당장 성과가 나는 걸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성과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다 '어느날 갑자기'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 변화의 원리다.

기업의 경우는 이 사이클이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S자의 윗부분 모양 그대로 고개를 숙이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곡선을 끊임없이 만드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정점에서 다음 S커브를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쓰러져가던 오티콘을 세계 1등 보청기 업체로 다시 세운 최고경영자(CEO) 라스 콜린드는 "오티콘이 75년 역사를 통해 이룬 것을 모두 잃어버리기까지는 딱 10년이 걸렸다"며 "새로운 2차주기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1차주기가 곧 사망주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로운 S커브를 만드는 일은 1차의 S주기가 고개를 숙이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S자의 윗부분에 있을 때는 미래도 밝게만 보인다는 점이다. 콜린드에 따르면 변화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회사들이 모두 규모,회사역사,성공경험을 믿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주위의 지적에도 '사업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다''협상력을 활용해 협력업체와 중간업체에 충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는 등의 이유를 들며 곧 고개 숙일 S커브를 인정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성공 경험이 전혀 없는, 그래서 S커브를 구경도 못해 본 젊은 회사들이 21세기 들어 약진하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성장의 S커브는 개인들에게도 적용된다. 입사 20년이 지나도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개인역량이 향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워낙 기술발달과 변화속도가 빨라 개인의 학습곡선도 올라가는 데 한참 걸리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부서장이나 간부가 될 때쯤 이제 변곡점을 맞아 학습곡선도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시기의 간부들 상당수가 S곡선의 정점으로 가는 그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임질 일이 많고 새롭게 맡는 일도 늘어 조금만 투입해도 성과가 눈에 띄게 높아지는 그 가치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더 애석한 것은 '바쁘다'는 이유로 새로운 2차 성장을 준비하는 시기를 눈뜨고 놓치고 있는 현실이다.

다음 세대의 먹을거리가 무엇인가 하는 우리 시대의 화두도 사실은 제2의 S커브를 찾는 질문이다. 우리 회사가 지금 성장커브의 어디쯤 와 있는지 자주 물어야 한다. 특히 간부직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내 곡선이 사망곡선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