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저녁 서울 영등포 시장 내 한 갈비집에 정운찬 국무총리와 각 부처 관계자들,중소기업 대표 등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간담회 명칭은 '토진간담(吐盡肝膽 · 간과 쓸개를 다 내놓고 실정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정 총리가 흉금을 터놓고 중소기업의 진솔한 애로사항을 청취해보겠다는 뜻에서 마련한 자리다.

하지만 총리실의 기대와 달리 중소기업인들은 '특별한' 애로사항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1년간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간담회를 가진 장관급 인사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 모두 8명.김동선 중소기업청장 등 4명의 차관급 인사도 찾아와 중기인들을 만났다. 이날 열린 총리 간담회까지 합하면 13개 부처 수장이 1년간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를 가진 셈이다. 지난달에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의원,보증기관 이사장들과도 간담회를 열었다. 중소기업과 연관된 정 · 관계 이해당사자들 모두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귀가 아프도록 들은 셈이다.

사실 중소기업의 바람과 요구는 꼭꼭 숨어있거나 복잡한 게 아니다. 간담회에서 제기된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안 통과,공사용 자재 직접구매 이행,산업기능요원 제도 유지 등의 건의내용은 그동안 간담회 때마다 단골메뉴로 나왔던 사안들이다. 이날 총리는 일부 중소기업인들의 건의사항에 대해 "내가 직접적으로 답은 모르지만 누가 답할 수 있는지는 안다"며 동행한 김동선 중기청장,안현호 제1차관 등을 지목했다. 이들은 아니나 다를까 기존 간담회에서 이미 수차례 나왔던 내용으로 대답했다.

이를 한참 듣던 한 중소기업인은 참석자들에게 "장 · 차관들끼리는 간담회를 안한답니까"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동안 쏟아낸 애로사항을 정부 부처끼리 공유도 안하면서 행사만 치르는 '생색 행정'을 꼬집은 것.

이날 간담회의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한 중소기업 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그동안 많은 고위공무원들이 (중앙회를)오갔지만 도대체 변한 게 없다"며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중소기업인이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주인공이 됐다.

고경봉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