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모술수가 판치는 천하쟁패의 소용돌이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인물은 매우 드문데,그중 장량과 소하가 있다. 우리에겐 장자방(張子方)으로 더 알려진 장량처럼 신비스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사마천이 장량을 말하면서 야전에 나서지 않고 군영의 장막에서 꾀로 승리를 도맡아 했다고 평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모든 전략은 천하쟁패에 승패를 가름할 만한 것이었다.

《사기》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의하면 곱상한 외모에 잔병치레를 많이 한 장량은 한(韓)나라 사람이다. 조부 개지(開地)는 한나라의 소후(昭侯),선혜왕(宣惠王),양애왕(襄哀王)의 상국을 지냈고,아버지 장평(張平)은 희왕(釐王)과 도혜왕(悼惠王)의 상국을 지냈다.

진나라에 의해 한나라가 멸망할 당시 그의 집에는 노복(奴僕)이 300명이나 되었는데,동생이 죽었을 때 장례도 치르지 않고 모든 가산을 털어 진시황을 죽일 자객을 구해 한나라의 원수를 갚으려 했을 정도로 의협심이 강했다. 장량은 또 무게가 120근이나 되는 철퇴를 만들어 동쪽을 순시하는 진시황을 박랑사(博浪沙)에서 쳐 죽이려 했으나 실패해 성과 이름을 바꾸고 은둔했다.

그가 병법을 터득해 모사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다소 황당하다. <유후세가>에 의하면 이렇다. 그가 은둔하던 중 어느 다리 위를 지나는데 한 노인이 자기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주워오라고 해 가져다 주니,신겨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신겨 주니 노인이 "젊은이가 가르칠 만하군,닷새 뒤 새벽에 나와 여기서 만나지"라는 뜬금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닷새 뒤에 약속 장소로 나가보니 이미 노인이 나와 있었다. 다시 닷새 뒤에 만나자고 하여 좀 더 일찍 갔으나 여전히 노인이 먼저 와 있었다. 다시 닷새 뒤에는 아주 한밤중에 가 기다리니 얼마 후 노인이 오더니 "마땅히 이렇게 해야지"하면서 《태공병법(太公兵法)》이란 책을 내놓았다. 노인은 "이 책을 읽으면 왕 노릇하려는 자의 스승이 되고,10년 후에 그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결국 장량은 노인의 말대로 유방이 가장 신뢰하는 모사가 됐다. 겸허함과 배려가 인물의 성장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는 명장면이다.

그는 은둔하는 동안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과 함께 지내기도 하다가 결국 하늘에서 재능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한 유방을 주군으로 섬기기로 하고 그의 핵심 모사가 된다. 장량의 조언에 대한 유방의 신뢰는 절대적이어서 천하를 통일했을 때 소하와 함께 3만호의 식읍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만호만 받고 유후(留侯)란 작위를 받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천하통일 후 유방이 1년 동안이나 논공행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저마다 공이 있다고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줄 식읍은 정해져 있고 공신들은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불안한 유방이 장량에게 해결책을 묻자,고조 유방과 사이가 가장 좋지 않은 자를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고조가 옹치(雍齒)란 자를 지목하면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자라고 말하니 장량은 대뜸 그를 최우선적으로 봉하라고 조언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고조가 옹치를 위해 친히 술자리를 마련하고 십방후(什方侯)로 봉하고,급히 승상과 어사(御史)를 재촉해 그의 공을 정하고 봉상을 진행하니 불만을 토로하던 신하들은 "옹치가 오히려 후(侯)가 되었으니 우리들도 근심할 게 없다"(<유후세가>)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나머지 공신들은 논공행상에서 제외됐다.

이렇듯 약소국 출신임에도 장량이 중용된 것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빼어난 지략을 갖고 그것을 최고 권력자에게 신중하게 조언해 천하경영을 해 나가도록 하는 그림자형 조언자이기에 가능했다. 말년에 태자 책봉 문제로 유방과 틈이 벌어지자,세치 혀에 의지해 그만한 지위에 오른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서 과감히 모든 것을 내던졌다. 오곡을 먹지 않고 양생술을 배우며 은둔의 길을 택하다가 삶을 마감한 그가 아들에게 후의 작위를 대신하게 만든 것은 오늘날 참모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