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의 불황을 겪은 세계경제가 1970년대 들어 상품가격 호황을 맞이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지하자원 가격이 계속 오르자 광물자원이 풍부한 라틴아메리카에는 장밋빛 미래가 약속된 듯했다. 경제학자들은 서구의 은행들이 개발도상국에 차관을 제공하도록 부추겼고,은행들은 석유수출국기구로부터 오일달러를 조달해 개도국에 차관을 제공했다. 상품가격은 강세였고,석유자본은 고수익 국가의 기간산업에 투자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도 은행도 미래를 낙관했다.

그러나 1970년대의 호황은 눈물로 막을 내렸다. 1980년대 초 많은 부자국가들이 인플레이션 관리에 들어가면서 금리가 폭등했고,이는 개도국의 부채 비용 부담을 폭증시켰다. 이에 따른 세계적인 수요와 상품가격의 붕괴는 1983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브라질,나이지리아,필리핀,터키 등 수많은 신흥시장 국가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졌다.

1996~2006년 주택가격 상승률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미국의 주택 실질가격 상승률은 92%에 달했다. 1890년부터 1996년까지 106년간 주택가격 상승률(27%)의 3배나 됐다. 주거를 위한 사용가치로 집을 샀을 때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들지만 투자가치로 집을 산다면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몰린다.

집값은 해외차입을 통해 더욱 부풀려졌지만 사람들은 미국이 신흥시장과 같은 금융위기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고도의 선진 금융시스템,금융통화 정책에 대한 높은 이해와 대출채권 유동화 등이 금융시장을 튼튼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필두로 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책마을] "불황은 없다" 큰소리 치다 경제파탄으로 땅 치는 국가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카르멘 라인하트 메릴랜드대 교수가 쓴 《이번엔 다르다》는 인류가 겪어온 금융위기의 역사를 폭넓게 탐색하며 근본 원인은 하나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밝힌 책이다. 이들은 지난 800년간 세계 66개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및 재정파탄 사례를 연구한 결과 호황과 불황은 반복되며,지나친 부채로 이뤄진 호황은 늘 금융위기로 막을 내린다고 경고한다.

특히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번지고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과거의 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이번만큼은 다르다' '우리와는 다르다'며 스스로 최면을 걸거나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며 큰소리치다가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의 경험도 예외가 아니다. 지속되는 경기 호황과 거품 발생,사람들의 낙관에 기초한 과도한 부채 증가가 언제나 금융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느 시대나 금융위기가 지나가면 반드시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재정위기로 연결된다며 국제채무,은행위기,인플레이션,환율 붕괴,화폐가치 하락 등 다양한 요인을 분석한다.

그 결과 금융위기는 늘 호황과 붕괴의 리듬을 일관되게 따랐으며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확산된 금융위기도 이 같은 현상의 최근 사례일 뿐이라고 이들은 설명한다. 각국의 해외채무에 따른 위기는 피렌체의 금융가가 영국 에드워드 3세에게 제공했던 14세기의 외채 사태부터 독일 상업은행가가 합스부르크 왕가에 제공한 외채,1970년대 뉴욕 은행가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제공한 외채까지 시기만 다를 뿐 전개 과정은 대동소이했다. 특히 신흥시장국가에 외채위기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선진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는 주권국가로 자리 잡은 초기 몇 년 동안 8회 이상의 외채 부도를 경험했고,스페인은 13차례의 부도 기록을 갖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나폴레옹 전쟁 당시 덴마크의 금융 패닉부터 최근의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모든 은행 위기는 선진국,중진국,후진국 모두에 오랫동안 고통을 안겨준다.

이들은 "명백한 사실은 국가,은행,개인,기업들이 호황기에는 과도한 차입을 반복하면서 위기의 징후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금융전문가와 고위 관리들은 늘 과거의 실수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었다고 주장하지만 매번 "지금의 호황은 과거와 달리 기술 진보와 훌륭한 기반 위에 세워졌고 구조개혁이 완성됐다"며 당대의 경제현실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