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병원그룹은 대전시내 4개 병원(대전선병원,중촌선병원,선치과병원,유성선병원)에 약 1000개 병상을 운영하는 종합병원이다. 이 중 구도심에 있는 모태병원인 대전선병원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지방 병원일 뿐이다. 하지만 이 병원에선 특이한 광경이 벌어진다. 다른 병원 관계자들이 교육받으러 오는가 하면 병원 경영진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달 초에도 4개 병원 관계자 28명이 찾았다. 폐쇄적인 병원 문화에 비춰볼 때 생소한 일이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타병원 관계자들이 선병원에서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무료 친절교육을 받고 식사도 한다. 1년에 보통 네 차례 정도 실시돼 연간 150~200명이 교육받는다.

각계 인사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기에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에서 KTX를 타고 선치과병원을 찾는지,환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 병원이 수두룩한데 어째서 내원환자가 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병원 내원환자는 매년 두 자릿수로 증가해 2005년 44만명에서 작년 68만명으로 4년 동안 54.5%나 늘었다.
[김낙훈의 현장속으로] '친절 경영 1번지' 대전 선병원
비수도권 소재 병원이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뭘까. 선병원만의 독특한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첫째,환자 및 보호자에게 친절하다.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오면 의사가 먼저 일어나 인사한다. 환자가 자리에 앉은 뒤에야 착석한다. 아침 회진 때 간호사도 환자들에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며 깍듯이 인사한다. 둘째,더 나은 봉사를 위해 아침마다 정신강령과 행동강령을 외우고 실천한다. 정신강령은 △난 매사에 적극적이다 △난 우리 병원과 동료를 죽도록 사랑한다 등 모두 여섯 가지다. 행동강령도 △난 먼저 인사하고 안내한다 △난 쉽게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등 일곱 가지에 이른다.

셋째,해외 최고의 서비스 기관을 벤치마킹한다. 병원 종사자 1000명 가운데 300여명이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태국 방콕의 고급 병원인 사미티벳병원이나 싱가포르의 래플즈병원,싱가포르에어라인,리츠칼튼호텔 등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최근엔 선승훈 의료원장(보건학 박사 · 51)이 일본의 MK택시와 교세라 등을 방문,교토기업의 서비스와 경영철학을 배웠다. 이런 노력이 환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의사진도 화려하다. 선 의료원장과 병원 설립자인 고(故) 선호영 박사는 우수한 의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훑어 한국계 의사를 여러 명 영입했다. 최근에도 매년 15~30명의 우수 의료진을 채용하고 있다. 선두훈 의료원 이사장(정형외과 · 53)은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고관절학회에서 '인공관절 표면처리기술'로 최고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선병원의 진수는 친절과 우수한 의료진이 아닌 경영철학에 있다. 이는 1966년 선병원을 설립한 선 박사에 의해 정립됐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당시 산재보험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한국계 광부들이 최고 등급의 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앞장서 혜택을 이끌어냈다.

그 뒤 가톨릭의대 교수를 거쳐 대전적십자병원장으로 재직하던 중 병원이 적어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대전에 개업했다. 낙후된 지역을 찾아 의료 봉사활동을 펼쳐 직접 진료한 무의촌 환자만 2만명이 넘는다. 700여명의 무의탁 노인에 대해 무료로 척추관절 수술을 해줬다. 이규은 선병원 행정원장은 "설립자는 병원비를 못 내고 도망간 환자의 집을 방문해 오히려 가정환경을 파악한 뒤 쌀을 사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선 박사는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병원 경영철학을 확립했다. '우리를 찾는 모든 이에게 언제나 제약 없이 최선의 의료를 제공한다. '이 내용은 선병원 앞뜰에 세워진 선 박사 흉상 아래 새겨져 있다.

"'언제나 제약 없이'라는 말은 돈이 없어도,밤늦게 찾아와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의미"라고 선승훈 의료원장은 소개한다. 선 박사의 아들 삼형제는 이 정신에 맞춰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선두훈 이사장은 가톨릭대 정형외과 교수직을 포기하고 대전으로 내려와 환자를 맞고 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경비원 청소원 식당직원들의 손을 잡아주며 인사한다.

선승훈 의료원장은 미국 버클리대와 조지타운대를 거쳐 시티은행 자금부장으로 재직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부친의 부름을 받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귀국,병원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김낙훈의 현장속으로] '친절 경영 1번지' 대전 선병원
선경훈 치과병원장(치과 · 47)은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와 뉴욕 치과대를 수료한 뒤 현지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았는데도 형들의 요청에 부응,대전지역 최초로 치과종합병원을 개설했다.

삼형제는 병원 내에선 환자나 보호자를 위한 공간이 더 중요하다며 방 1개를 공동으로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시로 대화를 나누며 선친의 철학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이것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와 친절경영으로 이어져 환자와 타병원 관계자들이 몰려오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