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입시고민 벗어난 대안학교의 삶
버릇없는 '요즘애들' 닮지 않길
버릇없는 '요즘애들' 닮지 않길
지난 주에는 큰아이의 학교에 다녀왔다. 여름 방학식을 앞두고 열리는 이틀간의 축제는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축제가 끝난 밤에는 학교 근처의 학부모집으로 자리를 옮겨 밤 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낡아서 등을 찔러대는 기숙사의 매트리스 교체 건에서부터 거기 모인 학부모 몇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뜰 이야기까지 나왔다.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인 만큼 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들이 블로그를 통해 이뤄진다. 이러저러한 공지 사항에서 한 학부모가 텃밭에 가꾼 작은 토마토 사진 등 소소한 일상까지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학교에는 1주일이 넘도록 도보로 제주도를 일주하고, 여느 학교에선 꿈꿀 수 없는 농사와 제빵,도예 등의 수업시간이 있다. 입시에 치였던 몇몇 학부모들이 블로그에 "행복한 줄 알아,이것들아"라고 댓글을 단 걸 보고 한참 웃었지만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우리의 10대는 어땠나. 국어 시간,춘향전을 배우다가 한 대목에서 학생들의 야유가 쏟아진 적이 있다. 사랑에 애면글면하는 춘향과 몽룡의 나이가 기껏 이팔청춘,16세 전후였던 것이다. 이 당시 이성 교제는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금지 사항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2년 마주쳤지만 눈길 한번 줄 수 없었던 남학생의 얼굴이 가물가물했다. 대안학교 교정이나 학생 식당 곳곳에서 커플로 보이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배가 아파서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행복한 줄 알아,이것들아."
한 학년이 40명이고 전교생이래야 12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다. 학생과 학부모의 면접을 거치고 2박3일간의 예비학교까지 다닌 뒤에 선발된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축소된 이 사회의 단면을 본다. 식사 당번을 밥 먹듯 빠지는 학생들과 흡연과 무단 외박을 한 학생들,가끔 도난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도 일어난다.
10여 년 전 귀농해 학교 근처에서 살고 있고 두 아이 다 이 학교에 보낸 한 학부모는 별일 아니라며 웃었다. "다른 학교 애들은 더해요. " 학교 설립 이후 10년을 지켜와봤지만 바뀐 것은 별 게 없다고 했다. 새내기 학부모이면서 서울에서 이 먼 곳까지 아이를 보낸 나로서는 좀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바뀌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귀족학교나 특수학교가 아니라 우리 학교만의 전통을 가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기숙사의 짐들을 정리해 택배로 부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큰애는 잠들었다. 짐으로 부치지 못한 기타를 옆에 끼고서.다른 학교 같았으면 입시 공부에 기타를 배울 짬이나 있었을까. 검게 탄 얼굴을 들여다보다 속으로 물었다. "행복하니?"
50대 한 남성이 몇 자리 앞에 서서 난감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정 좌석에 누군가 앉아 비켜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잘못 앉았다는 걸 알면 바로 비켜줘야 하는데 누군지 한참이나 뭉기적댄다. 어이가 없다는 듯 50대 남자분이 혀를 찼다. "참 요즘 애들…." 요즘 애들의 버릇없음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함무라비 법전에 있었다든가,나폴레옹 원정군이 발견한 로제타 지방의 비문에 있었다든가,그 누구도 '요즘 애들'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고 통쾌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기성인들은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척,나면서부터 바로 어른이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불만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열린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내게도 이따금 큰애는 따지듯 묻는다. "엄마,엄마는 2010년에 10대로 살아가는 게 어떤지 알아?"
2010년 10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경험해보고 싶지만 결코 경험해볼 수도 없다. 대답이 궁해진 나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나중에 너도 나이 들어봐."
하성란 소설가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인 만큼 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들이 블로그를 통해 이뤄진다. 이러저러한 공지 사항에서 한 학부모가 텃밭에 가꾼 작은 토마토 사진 등 소소한 일상까지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학교에는 1주일이 넘도록 도보로 제주도를 일주하고, 여느 학교에선 꿈꿀 수 없는 농사와 제빵,도예 등의 수업시간이 있다. 입시에 치였던 몇몇 학부모들이 블로그에 "행복한 줄 알아,이것들아"라고 댓글을 단 걸 보고 한참 웃었지만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씁쓸해지기도 했다.
우리의 10대는 어땠나. 국어 시간,춘향전을 배우다가 한 대목에서 학생들의 야유가 쏟아진 적이 있다. 사랑에 애면글면하는 춘향과 몽룡의 나이가 기껏 이팔청춘,16세 전후였던 것이다. 이 당시 이성 교제는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금지 사항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2년 마주쳤지만 눈길 한번 줄 수 없었던 남학생의 얼굴이 가물가물했다. 대안학교 교정이나 학생 식당 곳곳에서 커플로 보이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배가 아파서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행복한 줄 알아,이것들아."
한 학년이 40명이고 전교생이래야 12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다. 학생과 학부모의 면접을 거치고 2박3일간의 예비학교까지 다닌 뒤에 선발된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축소된 이 사회의 단면을 본다. 식사 당번을 밥 먹듯 빠지는 학생들과 흡연과 무단 외박을 한 학생들,가끔 도난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도 일어난다.
10여 년 전 귀농해 학교 근처에서 살고 있고 두 아이 다 이 학교에 보낸 한 학부모는 별일 아니라며 웃었다. "다른 학교 애들은 더해요. " 학교 설립 이후 10년을 지켜와봤지만 바뀐 것은 별 게 없다고 했다. 새내기 학부모이면서 서울에서 이 먼 곳까지 아이를 보낸 나로서는 좀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바뀌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귀족학교나 특수학교가 아니라 우리 학교만의 전통을 가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기숙사의 짐들을 정리해 택배로 부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큰애는 잠들었다. 짐으로 부치지 못한 기타를 옆에 끼고서.다른 학교 같았으면 입시 공부에 기타를 배울 짬이나 있었을까. 검게 탄 얼굴을 들여다보다 속으로 물었다. "행복하니?"
50대 한 남성이 몇 자리 앞에 서서 난감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정 좌석에 누군가 앉아 비켜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잘못 앉았다는 걸 알면 바로 비켜줘야 하는데 누군지 한참이나 뭉기적댄다. 어이가 없다는 듯 50대 남자분이 혀를 찼다. "참 요즘 애들…." 요즘 애들의 버릇없음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함무라비 법전에 있었다든가,나폴레옹 원정군이 발견한 로제타 지방의 비문에 있었다든가,그 누구도 '요즘 애들'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고 통쾌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기성인들은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척,나면서부터 바로 어른이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불만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열린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내게도 이따금 큰애는 따지듯 묻는다. "엄마,엄마는 2010년에 10대로 살아가는 게 어떤지 알아?"
2010년 10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경험해보고 싶지만 결코 경험해볼 수도 없다. 대답이 궁해진 나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나중에 너도 나이 들어봐."
하성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