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단순히 대결과 적대 관계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은 위험하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성공이 뒷받침돼야 중소기업들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얻을 수 있다. "

요한 크노블라우흐 크노블라우흐그룹 대표(62)는 23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300만개에 가까운 독일 중소기업들의 절반은 지멘스와 보쉬 등 독일 대기업들과 직 · 간접적 관계를 맺고 있다"며 "단순 하청 관계가 아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유기체적인 협력 구조가 독일을 수출 강대국으로 만든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크노블라우흐 그룹은 자기관리 프로그램과 기업자문 사업을 하는 컨설팅 전문 회사다. 2002년 독일 모범 중소기업에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최고상을 수상했다. 크노블라우흐 대표는 독일 경영협회(DMG) 회장단 멤버 중 한 명이다.

그는 "전체 기업 매출의 3분의 1(37.5%),고용의 3분의 2(70.5%)를 차지할 정도로 독일은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라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선 독일처럼 다수의 '히든 챔피언(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 중소기업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는 '가족소유 경영'과 '도제(徒弟) 제도'를 꼽았다.

기업 대물림을 통한 가족소유 경영은 안정적이고 일관성 있는 사업 수행에,전문계고 학업과 기업체 현장 실습을 병행하는 직업 훈련인 도제는 창의적인 인재를 산업현장에 끊임없이 공급하는 데 효과를 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크노블라우흐 대표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인 정책지원은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적인 거시경제 위기에서는 정부의 조정자 역할이 필수적이지만 민간 부문의 경쟁시장에 정부가 간섭하게 되면 역효과만 날 뿐"이라며 "경제구조가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라면 정부는 시장에서 최대한 멀리 물러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사결정과 시장대응 속도의 민첩성을 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 조건으로 제시했다. 크노블라우흐 대표는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시장의 경쟁력은 크냐(big),작으냐(small)에 따라 판가름됐지만 이젠 얼마나 빠르냐(fast)에 따라 제품의 성패는 물론 기업의 생존까지 좌우된다"며 "고객에게 바짝 다가서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까지 읽어내는 구글처럼 시장의 변화와 요구에 사전대응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기술적인 잠재력이 뛰어나다"며 "글로벌 틈새시장에 파고들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기술개발 과정에서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관련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주=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