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뇌관으로 꼽히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문제가 경찰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PF 대출 과정에서 편법이 동원된 것은 물론 뒷돈까지 오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대출비리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3일 서울 우리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3시간가량 이어진 압수수색을 통해 우리은행 본점 내 신탁사업단과 기업개선부 사무실에서 대출 신청서류와 부속서류,업무협정서 등이 들어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경찰은 우리은행 부동산팀장을 지낸 천모씨(45)가 모 부동산 시행사에 수천억원의 PF 대출을 주선한 대가로 해당 시행사에서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를 잡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천씨는 중국 베이징에 오피스텔 빌딩 건설 사업을 하는 부동산 시행사가 국민은행(2500억원)과 대한생명(1300억원)에서 총 3800억원의 PF 대출을 받을 수 있게 우리은행이 지급보증을 서도록 도와주고 2008년 3~8월 7차례에 걸쳐 28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천씨는 이 시행사에서 돈을 받은 직후인 2008년 4월 퇴직해 대출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경찰 관계자는 "장부상으로는 천씨가 시행사에서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상 대출 주선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잠적한 천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수재 혐의로 출국 금지했다.

경찰수사를 통해 은행이 2007년 이후 마구잡이식으로 PF 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이 뒷돈까지 챙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금융권 전반의 도덕성과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수사도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6월 정기검사를 통해 우리은행 신탁사업단이 2002년 6월부터 6년간에 걸쳐 PF 시행사가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4조2000억원 상당을 부당하게 지급보증해 준 것을 적발하면서 시작됐다.

우리은행도 이 과정에서 신탁사업단 일부 직원들의 배임 혐의를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앞서 경남은행에서도 부동산 PF 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제2금융권에 가짜 지급보증서를 발급한 수천억원대의 금융사고가 발생,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경남은행 장모 부장 등 2명을 긴급 체포했다. 검찰은 이들이 돈을 받고 가짜 지급보증을 서준 것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PF 대출 영업을 강화하면서 내부통제가 부실해진 측면이 있다"며 "다른 금융회사에도 우리은행과 비슷한 사례가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다음 주 정부의 민영화 방안 발표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터진 이번 악재로 은행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