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열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출범식.이명박 대통령이 이지송 LH 사장의 손을 꼭잡고 신신당부했다. "어렵사리 주공(대한주택공사)과 토공(한국토지공사)이 합쳐 LH가 탄생한 만큼 공공기관 선진화의 성공모델로 만들어주세요. "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돈 많이 벌 생각은 하지 마세요. LH 같은 공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우리나라 집값만 뜁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이 사장은 대통령의 신임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10개월간 주말을 반납해가며 밤낮없이 일했다.

열정이 넘치는 이 사장이지만 맘대로 안되는 게 있다. 118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해결하는 문제다. 하루 이자만 100억원에 육박할 정도다. 한국전력을 제치고 국내 최대 공기업이 된 LH의 자산규모는 130조원.사기업을 포함해도 국내 기업 가운데 삼성그룹(자산 174조원)에 이어 2위다. LH의 부채비율은 삼성그룹 부채비율의 10배인 500%를 훌쩍 넘어섰다. 덩치만 크고 영양실조에 걸린 '공룡 공기업'인 셈이다. '다이어트(사업 구조조정)'를 하고 '영양섭취(정부의 재정지원)'를 하지 않으면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우선 전국 414개 지구에서 1억8000만평,사업비 425조원에 달하는 택지 개발 · 신도시 조성 · 도심 재개발 사업 가운데 불필요하거나 늦춰도 될 곳은 과감히 포기하거나 축소해야 한다. LH 임원들은 "사업을 계속하라는 민원 때문에 바람잘 날이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설령 여 · 야를 가리지 않는 정치권 청탁과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의 민원이 쏟아지더라도 LH는 외풍에 맞서야 한다. LH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다면 그 사람들이 책임지겠는가. 이 과정에서 정부의 보상계획을 믿고 따른 주민들이 입을 피해와 불편을 지나쳐선 안된다.

지을수록 적자 늪에 빠지는 임대주택 100만채(노무현 정부 때 수립) 건설계획도 물량조정과 재원조달 방식의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하는 LH의 금융부채 75조원 중 투자원금 회수에 오래 걸리는 임대주택사업의 부채가 27조원이다. 신도시 택지개발 사업(27조원)과 함께 가장 많다. 두 사업을 합친 54조원만 어느 정도 줄여도 자금회전에 숨통이 트인다. 그러려면 정부가 임대주택 사업에 대해 재정지원 확대와 같은 '영양제'를 투여해야 한다.

사실 과도한 LH의 빚은 통합 이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통합 전인 주공과 토공 시절 임대주택과 신도시 조성 등 각종 국책사업을 떠안으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시 경영진이 빚을 줄이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을 뿐이다. 국책 사업을 수행하면서 두 공기업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부채를 떠안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LH 부채의 원죄는 전국 곳곳에 땅을 파헤치고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용 주택을 지으라고 지시한 정부에 있다. 노조 눈치를 적당히 봐가며 방만경영을 한 공기업 내부의 모럴 해저드도 무시할 수는 없다.

외환위기 이후 웬만한 공기업들은 정부 지침에 따라 공익성보다는 수익성에 맞춰 사업 · 경영 혁신을 단행했다. 이례적으로 수익보다는 공익 코드에 맞추다보니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게 LH다.

LH 경영진은 "대통령의 당부대로 돈 많이 벌 생각은 절대 없으니 빚 좀 줄여달라"고 당국에 호소하고 다닌다. 국내 최대 공기업이 공익과 사익의 균형점을 찾도록 부채의 '원죄'를 제공한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