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잊지못할 그 순간] "8년전 파업 노조원과 일주일간 밤샘대화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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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병 ADT캡스 회장
전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 5월.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지만 서울 삼성동 ADT캡스 본사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색색의 플래카드가 잔뜩 걸린 채 확성기 소음으로 가득 찼다. 노사 분규에 참가한 직원들은 본사 앞 도로를 메웠다. 파업에 참여한 직원은 전체의 절반가량인 1000여명.그들이 내뿜는 욕설과 고성 탓에 나는 마치 전쟁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대우그룹,한국신용정보원,캐리어LG 등을 거치면서 조직 내 갈등상황을 잘 헤쳐왔다고 자부해왔지만 이토록 험한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 전까지 같이 일하고 웃던 동료들이었지만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황에서 홀로 맞닥뜨리니 무섭기까 지 했다. 게다가 당시는 내가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넉 달이 되지 않았던 때라 상황 파악부터 힘들어 허둥대기만 했다.
며칠간 해결책을 고심하다가 '문제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푼다'는 평소 경영원칙을 떠올렸다. 1999년 캐리어LG의 초대 대표로 취임했을 때 LG의 사업부 인수로 인한 고용승계와 이주문제로 불거진 직원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컸다. 직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면서 진심으로 설득하자 대화가 잘 풀렸다. 나는 이런 경험을 거울 삼아 노조와 대화에 나섰다.
집무실 소파에서 잠을 자고 컵라면,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가면서 10일에 달했던 파업기간 중 1주일이 넘도록 노조원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새벽 2시나 3시에 시작된 대화는 해뜰 때까지 이어질 때도 있었다. 고객 서비스가 마비되는 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분규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은 여관에서 머물면서 24시간 1인 3역으로 근무하는 등 고생을 했다.
대화가 지속되자 직원들은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ADT캡스는 1971년 한국보안공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뒤 경영 악화로 1999년 미국의 다국적 보안서비스업체 타이코에 인수되며 사명이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직원들이 계속 문제를 제기해 온 24시간 2교대 근무환경이나 임금 등의 처우는 나아진 게 없었다. 또 상명하복의 군대식 기업문화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은 터지기 직전이었고 실적만 강조하는 경영진과는 아예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그들의 요구 조건을 최대한 수용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24시간 2교대였던 것을 3교대로 바꾸고 임금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노사분규를 거치며 직원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치료가 어려운 큰 손실이었다.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가 시급했다.
업무 정상화가 이뤄지자마자 나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고칠 수 있는 부분들은 즉시 반영할 수 있도록 '닥터캡스'라는 사내 신문고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건의한 직원의 신원 노출 가능성은 철저히 차단하고 반드시 48시간 내에 사장이 직접 답변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한 달에 400건 이상의 소원수리가 올라왔다. 문제는 즉시 확인해 고쳐나갔고 나는 조금씩 직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직원들과 한발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스킨십이 중요하다고 느낀 나는 2005년부터 3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직군에 상관없이 30~40명씩 그룹으로 나눠 소통,배려 등 기업문화를 익히는 1박2일짜리 프로그램인 '열정교육'을 시작했다. 반나절 이상은 승마,수상스키,스노보드 등 스포츠를 필수 코스로 넣었다. 중간 관리자 이상 간부들에게는 젊은이들의 감각과 에너지를 이해하고 흡수할 수 있도록 댄스교육,와인클래스,힙합 트레이닝과 스피치 및 커뮤니케이션 스킬 교육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및 리더십 교육을 실시했다. 연령층이 40~50대였던 만큼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
그렇지만 8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효과는 컸다. 열정교육을 시작한 2005년부터 ADT캡스의 매출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최근 몇 년간의 경기 불황 속에서도 지난 3년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직원들도 새로운 기업문화가 회사 수익 창출로 이어진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다.
우리 회사는 올 6월 노동부로부터 2010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도 선정됐다. 나는 직원들이 직장에서 즐거움을 찾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더 큰 성과로 여긴다. 돌이켜보면 노사갈등 덕분에 사내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8년 전 심각한 노사갈등을 극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대우그룹,한국신용정보원,캐리어LG 등을 거치면서 조직 내 갈등상황을 잘 헤쳐왔다고 자부해왔지만 이토록 험한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 전까지 같이 일하고 웃던 동료들이었지만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황에서 홀로 맞닥뜨리니 무섭기까 지 했다. 게다가 당시는 내가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넉 달이 되지 않았던 때라 상황 파악부터 힘들어 허둥대기만 했다.
며칠간 해결책을 고심하다가 '문제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푼다'는 평소 경영원칙을 떠올렸다. 1999년 캐리어LG의 초대 대표로 취임했을 때 LG의 사업부 인수로 인한 고용승계와 이주문제로 불거진 직원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컸다. 직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면서 진심으로 설득하자 대화가 잘 풀렸다. 나는 이런 경험을 거울 삼아 노조와 대화에 나섰다.
집무실 소파에서 잠을 자고 컵라면,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가면서 10일에 달했던 파업기간 중 1주일이 넘도록 노조원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새벽 2시나 3시에 시작된 대화는 해뜰 때까지 이어질 때도 있었다. 고객 서비스가 마비되는 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분규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은 여관에서 머물면서 24시간 1인 3역으로 근무하는 등 고생을 했다.
대화가 지속되자 직원들은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ADT캡스는 1971년 한국보안공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뒤 경영 악화로 1999년 미국의 다국적 보안서비스업체 타이코에 인수되며 사명이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직원들이 계속 문제를 제기해 온 24시간 2교대 근무환경이나 임금 등의 처우는 나아진 게 없었다. 또 상명하복의 군대식 기업문화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은 터지기 직전이었고 실적만 강조하는 경영진과는 아예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그들의 요구 조건을 최대한 수용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24시간 2교대였던 것을 3교대로 바꾸고 임금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노사분규를 거치며 직원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치료가 어려운 큰 손실이었다.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가 시급했다.
업무 정상화가 이뤄지자마자 나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고칠 수 있는 부분들은 즉시 반영할 수 있도록 '닥터캡스'라는 사내 신문고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건의한 직원의 신원 노출 가능성은 철저히 차단하고 반드시 48시간 내에 사장이 직접 답변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한 달에 400건 이상의 소원수리가 올라왔다. 문제는 즉시 확인해 고쳐나갔고 나는 조금씩 직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직원들과 한발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스킨십이 중요하다고 느낀 나는 2005년부터 3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직군에 상관없이 30~40명씩 그룹으로 나눠 소통,배려 등 기업문화를 익히는 1박2일짜리 프로그램인 '열정교육'을 시작했다. 반나절 이상은 승마,수상스키,스노보드 등 스포츠를 필수 코스로 넣었다. 중간 관리자 이상 간부들에게는 젊은이들의 감각과 에너지를 이해하고 흡수할 수 있도록 댄스교육,와인클래스,힙합 트레이닝과 스피치 및 커뮤니케이션 스킬 교육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및 리더십 교육을 실시했다. 연령층이 40~50대였던 만큼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
그렇지만 8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효과는 컸다. 열정교육을 시작한 2005년부터 ADT캡스의 매출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최근 몇 년간의 경기 불황 속에서도 지난 3년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직원들도 새로운 기업문화가 회사 수익 창출로 이어진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다.
우리 회사는 올 6월 노동부로부터 2010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도 선정됐다. 나는 직원들이 직장에서 즐거움을 찾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더 큰 성과로 여긴다. 돌이켜보면 노사갈등 덕분에 사내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8년 전 심각한 노사갈등을 극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