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가 가장 최근에 적자를 낸 것은 2008년 4분기였다. 당시 6648억원이라는 대규모 적자를 냈다. 국민은행은 2004년 4분기 3184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게 가장 최근의 적자다.

두 회사가 적자를 냈을 때의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회장이나 행장이 취임한 직후라는 점이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2008년 6월,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2004년 11월 각각 취임했다. 이 회장은 당시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이유로,강 전 행장은 카드사태 부실을 이유로 대규모 적자결산을 했다.

금융계에서는 새 수장이 취임하는 금융지주회사나 은행은 대규모 적자를 낸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새 회장이나 행장은 재임 기간 뚜렷한 성과를 올려야 한다. 그러자면 전임자 시절 덮어뒀던 잠재적 부실까지 털어내는 게 유리하다. 바로 다음해부터 나아진 실적을 낼 수 있어서다.

우리금융과 국민은행은 대규모 적자결산을 한 다음해인 2009년과 2005년 각각 1조1157억원과 2조2522억원의 흑자를 냈다. 대규모 적자를 내더라도 전임자의 탓인 만큼 부담도 적다. 전임자들이 재임 기간 중 실적을 위해 잠재적 부실을 감춰놨던 것도 한 요인이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1998년 주택은행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그랬다. 김 전 행장은 그해 8월 취임 직후 "장부상 흑자는 의미가 없다"며 5218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그해 주택은행은 291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주택은행은 김 행장 취임 1년 후인 1999년 45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김 행장은 일약 '스타 CEO(최고경영자)'로 떠올랐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로 하여금 정상여신의 0.85~6%,요주의 여신의 7~19%,고정여신의 20~49%,회수의문의 50~99%,추정손실의 100%를 충당금으로 쌓도록 하고 있다. 은행들은 보통 기준액의 최소금액을 충당금으로 쌓지만 행장이 바뀔 때에는 그 이상으로 적립금을 쌓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실 여신이 정상화되면 충당금은 다음 결산 때 이익으로 잡힌다"며 "신임 행장이 과거 행장 때 발생한 잠재적 부실여신에 대해서까지 충당금을 쌓아 놓으면 취임 후 몇 분기 동안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