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워싱턴에서 벌어진 여자축구월드컵에서 한 미국 선수가 코너킥 지점에 볼을 갖다 놓자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곧 경기장에 있던 4만여명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예정에 없던 '코너킥 기립박수'를 받은 선수는 미아 햄(38).당시 재정난으로 위기에 빠져있던 미국여자프로축구를 꿋꿋하게 이끌고 있는 데 대해 관중들이 찬사와 격려를 보낸 것이다.

미아 햄은 오랫동안 미국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며 266회의 A매치에 출전해 154골을 넣었다. 남녀 통산 가장 많은 골이다. 늘 팀플레이를 강조해 동료가 득점하면 자신이 골을 넣은 것보다 더 기뻐했다. 그가 이끄는 동안 미국 여자축구는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각 2회 우승하며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다. 2004년 은퇴 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고 지금도 '여자축구의 전설'로 통한다.

한국에도 미아 햄을 꿈꾸는 선수가 있다. 2010 독일 청소년 여자월드컵(20세 이하)에서 6골을 기록,득점 2위를 달리고 있는 지소연(19)이다. 그는 스위스전에서 해트트릭을,가나전에선 2골을 터뜨렸다. 26일 새벽 열린 멕시코전에서도 1골을 보태며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지소연은 드리블 · 패스 · 슈팅 3박자를 고루 갖춘 전천후 선수다. 2006년 10월 피스퀸컵에서 남녀 대표팀 통틀어 최연소인 15세8개월로 A매치에 데뷔했고,같은 해 12월 아시안게임에서는 A매치 최연소 득점기록(15세10개월)도 세웠다. 2009년 베오그라드 유니버시아드에선 MVP에 올랐다.

지소연의 희망은 제2의 미아 햄이 되는 것이지만 팬들은 그를 '지메시'라고 부른다. 지단의 넓은 시야와 패스감각,메시의 드리블과 득점력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다. 공격수로는 크지 않은 키(161㎝)지만 헤딩에 능하고 양발을 다 잘 쓴다. 이번 대회 득점왕까지 노리고 있다.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처음 결성된 때는 1990년이다. 베이징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육상 하키 등 다른 종목 선수들을 섞어 급조했다. 선수층이 엷고 동호인도 많지 않은 척박한 풍토지만 짧은 기간 급성장해 왔다. 나이답지 않게 침착하고 당찬 지소연의 다짐에서 한국 여자축구의 밝은 앞날을 본다. "오는 29일 독일과의 경기에선 골문 앞에서 냉정한 플레이를 할 거예요. 기회를 잘 살려 팀도 승리하고 득점왕 경쟁에서도 앞서 나가겠습니다. "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