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여름 휴가‥해외 휴가지서 만난 상사…통역에 술친구까지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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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신입사원
7월말~8월초 '황금 휴가기간'‥벌써 예약 했다는데…"이걸 그냥"
알뜰 휴가족도 있네!
평소 하고싶던 코·눈 성형수술‥연차 소진 없는 사외세미나 참석
7월말~8월초 '황금 휴가기간'‥벌써 예약 했다는데…"이걸 그냥"
알뜰 휴가족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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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가 심한 상사와 주변머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후배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김 과장과 이 대리.그래도 후텁지근한 날씨가 짜증을 돋우는 한여름이 즐겁기만 하다. 곧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어서다. 휴가만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평소라면 버럭 화 냈을 일도 너그럽게 넘기게 된다.
하지만 무조건 휴가를 가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자칫하면 팀장이나 부장과 휴가 날짜가 겹쳐 '상사없는 자유의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휴가지에서 상사와 딱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런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누가 '어린이날'에 휴가갈래?"
대부분 직장의 여름휴가는 1주일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2주일 휴가를 쓰는 비법이 있다. 다름아닌 직속 상사의 휴가 전후로 일정을 잡는 것.중견기업에 근무하는 한모 과장(33)은 "상사의 휴가기간을 전후해 여름휴가를 사용하면 상사와 2주일간 떨어져 지내게 된다"며 "상사 얼굴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휴가라는 정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휴가를 앞두고 상사의 심리도 느슨해지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이러다보니 휴가 일정을 짜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직속 상사의 휴가기간과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인다. 직속 상사가 휴가 가는 날은 보통 '어린이날'이나 '무두절(無頭節 · 상사가 없는 날이라는 의미의 직장인 은어)'로 불린다. 이 기간엔 출근해도 상사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느긋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칼퇴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날'을 피해 휴가를 갈 수 있는 특권은 고참들의 몫이다. 대개는 '짬밥' 순으로 휴가 일정을 짜기 때문에 상사와 동시에 휴가를 떠나는 불운은 막내가 차지할 수밖에 없다. 입사 이후 팀 막내 신세를 벗어나보지 못한 대기업 사원 유모씨(27)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장과 같은 기간에 휴가를 가야 한다. 유씨는 "그래도 휴가가 최성수기여서 해변에서 비키니 미녀는 실컷 볼 것"이라며 애써 쓰린 속을 달래고 있다.
◆휴가지에서 마주친 상사'으악'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정모 과장(35)은 지난 여름 휴가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는 5년간 부은 곗돈을 타 가족들과 함께 벼르고 벼르던 미국 여행길에 올랐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막판에 꼬이고 말았다. 귀국 이틀을 남겨둔 시점에 평소 말 섞는 것조차 싫어했던 팀장을 호텔 로비에서 맞닥뜨렸기 때문.
여행의 피로가 막 쌓여가던 터에 벌어진 조우는 그야말로 악몽의 시작이었다. 휴가지에서 본능적으로 발동되는 '부하모드' 탓이다. 영어를 못하는 팀장을 위해 통역은 물론 관광지 소개와 음식점 섭외,골프장 부킹,짐 나르기 등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챙겨주어야 했던 정 과장.이틀밤 내내 호텔 바에서 쏟아지는 잠과 싸우며 술친구 역할까지 해준 것은 물론이다.
휴가지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만큼 우울한 일도 없거늘,박모 과장(35)은 이달 중순 가족들과 강릉 경포대에서 해수욕을 즐기면서도 업무를 봐야 했다. 그의 족쇄는 스마트폰.박 과장은 "모 CF를 보면 전국 해수욕장이 와이파이존이라고 떠들어대는 판에 부장한테 인터넷 안 터진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어 꼼짝없이 업무를 처리했다"며 "그러면서도 부장에게는 스마트폰이 있으니 컴퓨터가 없는 곳에서도 회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며 아부를 떨었다"고 말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거늘…
대기업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하는 김모씨(30)는 이직을 앞둔 선배의 뻔뻔스러운 휴가 몰아쓰기로 피해를 본 경우다. 이직하기 전 쌓아둔 연차를 모두 소진할 심산이었는지,이제 떠날 몸이니 거칠 게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선배는 팀원들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열흘간 휴가를 냈다. 이 때문에 원래 이 기간에 휴가를 예정하고 있던 김씨가 '독박'을 썼다. 김씨는 "여자친구와 잡은 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미리 귀띔이라도 해 줘야 '대처'가 가능할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신입사원의 '무개념'도 전 부서의 눈총을 사기 십상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임모씨(38)는 "새로 들어온 직원이 눈치도 없이 7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의 '황금 기간'에 비행기 티켓을 끊어 놨다고 휴가권을 주장해 기가 막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대개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동료들에게 이 기간을 배려했는데 막 들어온 직원이 거리낌없이 자기주장을 펴는 것을 보고 세대차이를 많이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휴가기간을 둘러싼 사내 다툼은 양반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태클에는 답도 없다. 정보기술(IT)업계에 종사하는 장모 과장(34)은 '갑'인 클라이언트의 허락 없이는 휴가도 가지 못한다. 클라이언트에게 매일 오전 7시 이전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부하직원이 아직 업무에 익숙지 않아서 일을 맡길 수가 없는 상황이다.
◆나는 알뜰한 휴가족
공항은 해외관광객들로 미어터진다지만 오늘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알뜰 직장인들에게 '화려한 휴가'는 남의 나라 얘기다. 비용을 절약하는 알뜰족도 있지만 휴가기간에 성형수술 등에 도전하는 '시간 알뜰족'도 있다.
짠돌이 직장인들의 알뜰 휴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사외 세미나 활용이다. 대기업 기술지원팀에 다니는 김모 과장(35)은 이달 말 부산에서 열리는 3박4일 일정의 외부 기관 세미나에 부인과 두살배기 아들을 데려갈 생각이다. 여름과 겨울에 한 차례씩 열리는 기술세미나에는 김 과장이 속한 팀에서 순번을 정해 한 명씩 참가한다. 어차피 독방을 쓰는 데다 세미나 일정도 오전 이후엔 없어 사실상 '연차 소진 없는 휴가'라고 사내에서 정평이 나 있다. 부인의 비행기표는 그동안 쌓아온 마일리지로 충당하기로 했다.
전문직 최모씨(29)는 이번 휴가 전 단호박즙을 대량 주문할 예정이다. 이유는 단 하나,그동안 콤플렉스였던 코를 수술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웬일로 장기휴가를 독려,열흘 휴가를 내게 된 최씨는 휴가 전날 양해를 구하고 일찍 퇴근해 바로 수술대에 오를 생각이다. 최씨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제 성형을 하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30대가 되기 전 콤플렉스를 없애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라며 "쓴물이 올라올 때까지 호박즙을 마시며 붓기를 빼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관우/이정호/김동윤/이상은/이고운/강유현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