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국무총리,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정부부처,그리고 여당 최고위원까지 최근 화두는 중소기업 보호 · 육성과 친서민이다.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 발전 전략 수립을 강조했고,국무총리는 "대기업이 신성장동력산업인 녹색성장 분야까지 독식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 최고 권력층의 의지는 공정위와 금융위 등 정부부처들의 규제와 대기업 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서민경제를 위한 관치금융은 아무리 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까지 나아갔다.

정부 · 여당 내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은 우리나라가 금융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한 데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6% 내외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배분이 일부 대기업과 부유층에 한정돼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보다 근원적으로는 그로 인해 정부와 여당이 인기가 없고 이는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정부 여당의 목표에 장애물이 된다는 인식에 입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속담에도 있는 것처럼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못 쓰는 법이다. 정부의 친서민정책과 중소기업 보호육성 정책은 현 정부가 처음 시도한 게 아니라 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역대 정부들도 한결같이 시행해 온 정책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서민경제가 윤택해졌다고 말할 수 없고,중소기업들 가운데서 삼성 · LG ·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탄생한 적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대 · 중소기업 간 격차나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대기업이나 부자들 탓이라고 믿고 있고 이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개입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난에 따라 가격,품질,물량 등 거래조건들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는 정부의 압력으로 시장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지도록 강요하는 것을 뜻하고,이러한 반시장적 거래는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급기야 기업의 도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안별로 중소기업이나 서민이 억울함을 당하는 거래 행태와 관행이 있을 수 있고 이에 대한 신중하고도 합리적인 검토를 통해 제도를 정비하고 행태와 관행을 바꾸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기업의 영업활동 모두 문제가 있다거나 서민 또는 중소기업이란 이름만 붙이면 정부가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비쳐지는 주장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과 인식들이 반기업정서를 부추겨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가들의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캐피털사가 받는 이자가 높다거나 정부 정책의 과실이 대기업에만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결국 서민들은 연 50%가 넘는 이자로도 급전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 또 대기업이 정부에 의해 견제를 당하는 녹색산업은 투자여력 부족과 기술수준 낙후로 목표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 관치금융이 외환위기 주범이자 우리나라 금융 낙후의 주범임은 잘 알려진 바이고 서민금융에 정치권이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우리나라의 카드사태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면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정부나 정치권이 진정 일자리를 늘리고 서민경제 개선과 중소기업 활성화를 원한다면 대기업을 비판할 게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렵지만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서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며 규제와 조사 등으로 기업과 시장에 개입하려는 유혹에서 탈피해야 한다. 경제는 명령으로 되지 않는다. 이 평범한 진리가 정부와 정치권에도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이주선 한국경제硏 연구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