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징크스 날려버린 2.5m 환상 버디…역시 '파이널 퀸'
지난 25일 밤(한국시간) 미국LPGA투어 에비앙 마스터스 4라운드가 열린 프랑스의 에비앙 마스터스GC(파72).미국을 대표하는 모건 프레셀과 한국의 '간판' 신지애가 챔피언조로 나란히 티잉 그라운드에 올랐다. 두 선수는 드라이버샷 거리가 237야드(프레셀),241야드(신지애)로 '또박이 형' 골퍼였으나 미셸 위,브리타니 린시컴 등 장타자 못지않게 빈틈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한 선수가 버디를 잡고 앞서 가면 다른 선수가 곧바로 추격하며 갤러리들의 숨을 멈추게 했다.

11년 징크스 날려버린 2.5m 환상 버디…역시 '파이널 퀸'
2타 앞선 프레셀이 초반 주춤하던 사이 신지애가 4번홀에서 버디를 잡고 간격을 1타차로 좁혔다. 그러자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려는 듯 선글라스를 끼고 플레이하던 프레셀이 5번홀(파4)에서 회심의 이글로 반격해왔다. 홀까지 100여야드를 남기고 친 두 번째 샷이 홀 옆에 떨어진 뒤 스핀을 먹고 홀 속으로 들어간 것.보기 드문 '파4홀 이글'이었다.
신지애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프레셀이 볼을 홀에서 꺼내는 것을 보고 위축될 만도 했으나 3m버디로 응수했다. 둘 사이의 간격은 2타.

6,7번홀에서 버디 기회를 놓치고 어려운 파세이브를 하며 기복을 보인 신지애는 8번홀(파3)에서 2m 버디퍼트를 성공시키며 다시 1타차로 좁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프레셀이 9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고 2타차로 달아났다.

전반은 프레셀이 14언더파,신지애가 12언더파.경기 시작 당시의 간격이 그대로 유지됐다. 그 사이 또 다른 미국선수 알렉시스 톰슨도 12언더파를 만들며 선두권에 합류할 태세였다.

후반 들어 프레셀의 첫 실수가 나왔다. 10번홀에서 그린미스 끝에 보기를 한 것이다. 다시 1타차로 접근한 신지애는 13번홀(파4)에서 3m 버디퍼트를 넣으며 이 대회 들어 처음 프레셀과 공동 선두를 이뤘다. 승부의 추가 신지애 쪽으로 기우는 것을 암시하는 순간이었다.

두 선수는 버디퍼트가 홀 앞에서 멈추고 홀을 돌아나오는 등 팽팽한 승부를 이어나갔고,운명의 18번홀(파5)에 다다랐다. 이미 경기를 마친 톰슨과 최나연(23 · SK텔레콤)을 비롯해 네 선수가 13언더파였다. 연장 승부까지도 예견됐다.

18번홀은 479야드의 짧은 파5로 웬만한 선수들이 버디를 노릴 수 있는 홀.신지애와 프레셀은 예상대로 버디기회를 맞았다. 버디퍼트 거리는 신지애가 2.5m,프레셀이 1.5m가량이었다. 두 선수 중 한 사람이라도 버디를 잡으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신중하게 어드레스를 취한 신지애의 내리막 버디퍼트가 홀을 향해 구르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갤러리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공은 프레셀에게 넘어갔다. '넣어야 연장 승부'를 바라볼 수 있는 상황.최종일 위기 때마다 빛을 발했던 프레셀의 퍼트는 그러나 결정적 순간 홀을 외면했다. 연장 진입을 바라고 시도한 버디퍼트가 홀 왼쪽으로 흐르면서 신지애와 프레셀의 희비는 갈리고 말았다. 신지애는 이번 대회 71홀 동안 프레셀 등에게 끌려다니다가 최종일 최종홀 버디 하나로 알프스의 주인공이 됐다.

신지애는 별명이 '파이널 퀸'일 정도로 마지막으로 갈수록 강한 선수이지만,이번 대회에서는 72홀 동안 보기는 단 2개밖에 기록하지 않았다. 신지애는 "마지막 퍼트 때 손이 떨렸다"고 했지만 마지막 날에도 '노 보기'에 버디만 5개 잡는 침착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 홀 버디는 2007년과 2008년 장정(30 · 기업은행)과 최나연에게 연장전에서 분루를 삼키게 한 '18번홀 징크스'를 떨쳐버린 것이어서 우승 못지않은 값진 버디였다.

1타가 뒤져 2위에 그친 최나연의 선전도 돋보였다. 최나연은 최종일 14~17번홀에서 4연속 버디를 잡고 13언더파까지 치솟았다. 공동 선두권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수가 모자랐다. 18번홀에서 시도한 2.5m 버디 퍼트가 빗나가고 말았다. 이 퍼트가 들어갔으면 신지애와 연장다툼을 벌일 뻔했다.

골프대회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늘 이렇게 온다. 톱랭커 2명이 엎치락뒤치락 선두경쟁을 하거나,'무명' 선수가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고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것도 명승부 중의 명승부로 꼽힌다.

이날 신지애(22 · 미래에셋)가 그랬다. 정규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결코 쉽지 않은 버디를 잡고,경쟁자들을 보기좋게 따돌린 것이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갤러리들에겐 '골프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