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법원 판결도 국내서 효력…모르고 당하는 기업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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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상 하자·관할권 여부 따져 신중히 대처해야
중소기업 D사는 2000년 국민은행 아르헨티나 지점에서 150만달러를 대출받았다.
그런데 2002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과거 외화로 대출해준 돈을 무조건 일대일 비율로 계산해 페소화로 변제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을 공포했다. 페소화 가치는 달러 대비 3분의 1에 불과했다.
D사는 150만페소(약 50만달러)로 대출금을 상환했다. 국민은행은 순식간에 100만달러를 손해본 셈이다. D사는 아르헨티나 법원에서 이 대출금 변제가 유효하다는 취지의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이후 국민은행이 예치돼 있던 D사의 예금에서 돌려받지 못한 100만달러를 상계하자 D사는 국내 법원에 소송을 냈다. 외국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으니 국내에서도 '계산'은 끝났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이 확정판결이 우리 사회 질서에 어긋난다고 판단,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이 국내에서도 효력이 있는지 여부는 해외 진출 기업들의 '현안'이다. 고재종 선문대 교수가 올 4~7월 국내 기업 116곳의 법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6개사(48.3%)가 외국 법원에 피소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법원 판결 때문에 100만달러를 '고스란히' 잃을 뻔했던 국민은행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본 기업이 상당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국 법원 확정판결에 기업 발목 잡힌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외로 사업 영역을 넓힌 기업의 상당수는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로 피해를 보거나,승소하더라도 비용과 시간을 낭비한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이는 우리나라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이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도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법은 외국 법원 판결의 옳고 그름을 국내 법원에서 다시 심리하지 않는다. 외국 법원이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한 상태에서 확정판결을 했다 해도 승소한 쪽이 국내 법원에 집행판결 등 절차를 밟는다면 강제집행을 막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전경련과 한국기업법무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국제민사소송제도 개선을 위한 세미나'에서는 △외국 판결의 국내 집행 시 국내법원이 외국 재판 과정의 공정성을 따질 수 있는 근거 △과도한 소송비용 감액 △외국 법원과 국내 법원에 중복 제소 시 각하 처리 감소 등의 방향으로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중히 대응해야
임성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기업이 외국 법원에 (피고로) 제소되는 경우 섣불리 응소했다가는 현지 법원에 사건 관할권이 넘어간다"면서 신중한 대응을 당부했다. 국제재판 관할의 기준에 따라 해당 국가에 관할권이 없을 경우 외국 판결은 국내에서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임 변호사는 "해당 국가에 집행 가능한 자산이 있다면 응소할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자산이 주로 국내에 있는 경우에는 우리 법원에서 해당 국가의 판결을 승인할지 여부를 미리 자문받아 대처하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법원이 외국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외국 법원에서 승소한 쪽이 기업의 국내 자산에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 동향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4월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외국 판결이 국내에서 효력을 지니려면 실질적인 심문 절차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동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심문 없는 판결은 국내 집행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며 "판결 절차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외국 판결의 효력을 국내에서 무효화할수 있는 절차상 하자 등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도 필수다. 지난해 1월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멕시코 회사가 LG를 상대로 낸 매매대금 청구소송에서 LG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멕시코 회사 측이 멕시코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긴 했지만 LG 측에 기일소환장을 제대로 통지하지 않는 등 과정상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그런데 2002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과거 외화로 대출해준 돈을 무조건 일대일 비율로 계산해 페소화로 변제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을 공포했다. 페소화 가치는 달러 대비 3분의 1에 불과했다.
D사는 150만페소(약 50만달러)로 대출금을 상환했다. 국민은행은 순식간에 100만달러를 손해본 셈이다. D사는 아르헨티나 법원에서 이 대출금 변제가 유효하다는 취지의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이후 국민은행이 예치돼 있던 D사의 예금에서 돌려받지 못한 100만달러를 상계하자 D사는 국내 법원에 소송을 냈다. 외국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으니 국내에서도 '계산'은 끝났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이 확정판결이 우리 사회 질서에 어긋난다고 판단,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이 국내에서도 효력이 있는지 여부는 해외 진출 기업들의 '현안'이다. 고재종 선문대 교수가 올 4~7월 국내 기업 116곳의 법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6개사(48.3%)가 외국 법원에 피소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 법원 판결 때문에 100만달러를 '고스란히' 잃을 뻔했던 국민은행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본 기업이 상당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국 법원 확정판결에 기업 발목 잡힌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외로 사업 영역을 넓힌 기업의 상당수는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로 피해를 보거나,승소하더라도 비용과 시간을 낭비한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이는 우리나라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이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국내에서도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법은 외국 법원 판결의 옳고 그름을 국내 법원에서 다시 심리하지 않는다. 외국 법원이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한 상태에서 확정판결을 했다 해도 승소한 쪽이 국내 법원에 집행판결 등 절차를 밟는다면 강제집행을 막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전경련과 한국기업법무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국제민사소송제도 개선을 위한 세미나'에서는 △외국 판결의 국내 집행 시 국내법원이 외국 재판 과정의 공정성을 따질 수 있는 근거 △과도한 소송비용 감액 △외국 법원과 국내 법원에 중복 제소 시 각하 처리 감소 등의 방향으로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중히 대응해야
임성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기업이 외국 법원에 (피고로) 제소되는 경우 섣불리 응소했다가는 현지 법원에 사건 관할권이 넘어간다"면서 신중한 대응을 당부했다. 국제재판 관할의 기준에 따라 해당 국가에 관할권이 없을 경우 외국 판결은 국내에서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임 변호사는 "해당 국가에 집행 가능한 자산이 있다면 응소할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자산이 주로 국내에 있는 경우에는 우리 법원에서 해당 국가의 판결을 승인할지 여부를 미리 자문받아 대처하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법원이 외국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외국 법원에서 승소한 쪽이 기업의 국내 자산에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 동향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4월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외국 판결이 국내에서 효력을 지니려면 실질적인 심문 절차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동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심문 없는 판결은 국내 집행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며 "판결 절차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외국 판결의 효력을 국내에서 무효화할수 있는 절차상 하자 등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도 필수다. 지난해 1월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멕시코 회사가 LG를 상대로 낸 매매대금 청구소송에서 LG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멕시코 회사 측이 멕시코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긴 했지만 LG 측에 기일소환장을 제대로 통지하지 않는 등 과정상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