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친서민'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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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용·고위험으로 효과 낮아
재정 감안 길게 보고 추진하길
재정 감안 길게 보고 추진하길
정부가 '친서민' 정책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저소득층의 자활을 돕기 위해 '미소금융'을 도입했고,"돈 없어 학교 못 다니는 일은 없도록" '취업 후 학자금상환제'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미소금융의 실적이 부진하자 '햇살론'을 내놓았다. 학자금상환제도 대출 금리를 내린다고 한다.
미소금융은 실적이 무척 저조하다. 지난해 말 출범 이후 모두 123억원 정도 대출에 그쳐 목표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학자금상환제도 그에 못지않게 부진하다. 시행 첫해인 올해 1학기 11만명 정도가 대출받아 당초 예측한 100만명보다 훨씬 적다.
미소금융이 왜 부진한가.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출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급자인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대출했다가 부실채권이 되면 누가 책임지는가. 자활사업의 핵심인 사후관리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경영 컨설팅 등을 제대로 해 주어야 하는데 인력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학자금상환제가 부진한 이유도 비슷하다. 수요자인 학생 입장에서 보면 대출 금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조건도 까다롭다. 반면 공급자인 금융기관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상환 능력을 안 보고 낮은 금리로 대출했다가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소금융의 부진을 메우고자 도입한 햇살론은 어떨까. 창업자금 지원인 미소금융만으로 한계가 있어서 긴급 생계비를 지원한다지만,지원이 그대로 이뤄질 경우 십중팔구 부실채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이미 대부업체 등에 빚을 지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이들이 이중삼중으로 돈을 빌리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려면 물론 대출이 부진할 것이다.
학자금상환제의 금리 인하는 어떤가. 올해 2학기 적용금리를 1학기보다 0.5%포인트 내린 연 5.2%로 결정했다지만,이 정도로 부담이 낮아질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대폭 내리고 문턱을 낮추어 대규모 대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데 등록금은 엄청 비싸다. 무더기로 대출을 했다가는 금융이 거덜 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미소금융이건,학자금상환제이건,햇살론이건 현실적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서민에 도움을 주려면 금융이 멍들고,금융이 멍들지 않으려면 서민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친서민정책을 그만 두어야 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현실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미소금융이 부진한 큰 원인이 사후관리 능력 부족에 있다면 그런 능력을 키우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다. 학자금상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수 없는 이유가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고 등록금이 비싼 것이라면,대학에 안 가고도 '사람 구실'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고,등록금 자체를 낮추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맞다.
미소금융의 사후관리능력을 올리거나 대학 진학률을 낮추는 것은 장기적 '구조조정'의 문제다. 등록금 인하는 결국 재정 부담 증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등록금 인하뿐 아니라 친서민정책 중에는 재정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여럿 있다. 근로장려세제 강화,기초생활보장의 허술한 구석 메우기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금융만큼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기는 어렵더라도 금융이 갖는 딜레마는 없다.
장기적 '구조조정'은 무척 어려운 과제다. 재정 부담 증가 문제도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시행하려면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어렵다고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려운 일을 하지 않고 어찌 '친서민' 같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겠는가.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
미소금융은 실적이 무척 저조하다. 지난해 말 출범 이후 모두 123억원 정도 대출에 그쳐 목표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학자금상환제도 그에 못지않게 부진하다. 시행 첫해인 올해 1학기 11만명 정도가 대출받아 당초 예측한 100만명보다 훨씬 적다.
미소금융이 왜 부진한가.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출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급자인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대출했다가 부실채권이 되면 누가 책임지는가. 자활사업의 핵심인 사후관리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경영 컨설팅 등을 제대로 해 주어야 하는데 인력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학자금상환제가 부진한 이유도 비슷하다. 수요자인 학생 입장에서 보면 대출 금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조건도 까다롭다. 반면 공급자인 금융기관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상환 능력을 안 보고 낮은 금리로 대출했다가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소금융의 부진을 메우고자 도입한 햇살론은 어떨까. 창업자금 지원인 미소금융만으로 한계가 있어서 긴급 생계비를 지원한다지만,지원이 그대로 이뤄질 경우 십중팔구 부실채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이미 대부업체 등에 빚을 지고 있을 가능성이 큰데,이들이 이중삼중으로 돈을 빌리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려면 물론 대출이 부진할 것이다.
학자금상환제의 금리 인하는 어떤가. 올해 2학기 적용금리를 1학기보다 0.5%포인트 내린 연 5.2%로 결정했다지만,이 정도로 부담이 낮아질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대폭 내리고 문턱을 낮추어 대규모 대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데 등록금은 엄청 비싸다. 무더기로 대출을 했다가는 금융이 거덜 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미소금융이건,학자금상환제이건,햇살론이건 현실적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서민에 도움을 주려면 금융이 멍들고,금융이 멍들지 않으려면 서민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친서민정책을 그만 두어야 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현실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미소금융이 부진한 큰 원인이 사후관리 능력 부족에 있다면 그런 능력을 키우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다. 학자금상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수 없는 이유가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고 등록금이 비싼 것이라면,대학에 안 가고도 '사람 구실'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고,등록금 자체를 낮추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맞다.
미소금융의 사후관리능력을 올리거나 대학 진학률을 낮추는 것은 장기적 '구조조정'의 문제다. 등록금 인하는 결국 재정 부담 증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등록금 인하뿐 아니라 친서민정책 중에는 재정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여럿 있다. 근로장려세제 강화,기초생활보장의 허술한 구석 메우기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금융만큼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기는 어렵더라도 금융이 갖는 딜레마는 없다.
장기적 '구조조정'은 무척 어려운 과제다. 재정 부담 증가 문제도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시행하려면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어렵다고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려운 일을 하지 않고 어찌 '친서민' 같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겠는가.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