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의 초청으로 중소기업 옴부즈만 자문위원 오찬간담회가 27일 총리공관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는 중소기업 옴부즈만 출범 1주년을 기념하고 옴부즈만의 노고를 격려하는 자리였지만 최근 정부의 대기업 압박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기업 성토장'으로 변했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박상용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도 참석해 중소기업의 애로와 건의사항을 꼼꼼히 메모했다.

정 총리는 인사말에서 '9988'이란 말을 소개했다. 정 총리는 "국내기업 수의 99%가 중소기업이며 일자리도 88%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고 설명한 뒤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도 (중소기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잘돼야 나라도 잘되고 일자리도 많이 생긴다"며 "그러나 오래 전부터 중소기업이 튼튼하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또 "기업 행동을 옥죄는 규제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업 관행이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 총리는 나아가 "대기업이 힘이 세니까 불합리한 기업 관행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대기업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경기가 나쁠 때는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호황기에는 대기업만 좋고 거기에 납품하고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서운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토론에서는 대기업의 우월적 행태에 대한 비난과 건의사항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환율이 나빠지면 중소기업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좋아질 때는 이익을 나누지 않는 관행은 고쳐야 한다"고 했다. 또 "비정상적인 거래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대 · 중소기업 관계에서 갑을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해야 대기업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옴부즈만 자문위원들은 △대기업의 원가계산 요구 관행 개선 △불합리한 발주 관행 개선 △중소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 △입찰시스템 보완 등을 집중 건의했다.

한 자문위원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정당한 사유 없이 원가계산서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마음대로 요구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인 틀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불합리한 발주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이민화 옴부즈만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발주할 때 구두 발주가 아닌 계약에 의한 서면 발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발주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며 발주 물량 예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문위원들은 또 입찰시스템을 보완해줄 것을 요구했다. 납품단가에 의한 기계적인 평가가 아니라 기술력과 업종 특성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기업이 중소기업에서 받은 사업기획서의 비밀을 보장하는 등 중소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도 제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중소기업의 건의사항에 대해 정 총리는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은 조속히 추진하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기업 관행과 문화에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중소기업과 상생을 잘하고 있는 대기업을 초청해 대 · 중소기업 간 상생 토론회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창영 총리실 공보실장은 브리핑에서 "비공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대기업의 책임 있는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중소기업의 업종별 대표 등이 모여서 대 · 중소기업 협의체를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