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 지방선거 참패 이후 여권의 화두가 온통 '서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 기조를 '친서민'으로 맞추면서 연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을 거론한 데 이어 정운찬 국무총리도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방문해 여론을 경청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여당인 한나라당은 서민정책특위를 만들어 다양한 서민정책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여당 인사들은 '한나라당=부자당 · 대기업당'이라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잇달아 친서민을 외치고 있다. 여권 안팎에선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자체 원인 분석이 서민정책에 대한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사회적 책임 다해야"

이 대통령은 27일 저녁 토론식으로 열린 국무회의 석상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대기업들이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우선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가 성장했으나 서민들이 체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경제 성장을 통해 양극화의 간극을 줄여나가야 하며 지금은 그런 선순환을 위한 시작 단계에 들어섰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투자하고,중소기업과 서민층이 살아나고,서민들의 소득과 소비가 늘어나고,그것이 다시 대기업 성장의 발판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대기업들이 앞장서 달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지난 2년간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우리 대기업은 다른 어느 나라의 기업들보다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일자리 창출과 투자,중소기업과의 상생 · 협력 문제에서 대기업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특히 "대기업들은 미소금융 같은 서민정책에 적극 동참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보다 직설적으로 말했다. 경제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서 대기업들의 상황은 좋아지고 있는 반면 서민이나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만큼 대기업들이 서민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사회적 활동에 나서라는 주문이다.

◆선거 충격 · 지지율 하락 마지노선

여권이 이처럼 친서민 정책기조를 강화하는 데는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정무 · 홍보라인 등의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40%대에 이르는데도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등을 돌린 것은 이명박 정부가 여전히 '부자 정권''불통 정권'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대통령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그동안 서민과 중산층을 국정의 중심에 두고 보금자리주택,미소금융,든든학자금 등 친서민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이 같은 노력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는 결론인 셈이다. 특히 여권에선 경제성장률과 수출액 등이 몇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대기업이 수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는 등의 소식이 오히려 서민들의 위화감만 부채질했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경제위기 극복의 과실이 대기업과 부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서민들은 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이대로 가다간 계층 간 불만과 대립이 심화되고 정권 재창출은 요원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서민위주 정책'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털어놨다.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은 "경기 회복 국면에서 지금은 기업들이 충분히 회생 가능한 시점이기 때문에 이제는 서민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 여권이 과도하게 친서민을 내세울 경우 역효과가 나거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당 내 경제통인 이한구 의원은 "서민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과도하게 쏟아질 경우 시장경제 논리로 가지 않고 정치 논리,선심 논리로 변질될 수 있다"며 "우선순위를 정하고 균형 잡힌 정책 집행이 이뤄져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친서민' 기조 강화

여권 핵심 인사들도 앞다퉈 친서민을 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운영 기조를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라고 규정하며 "이제는 서민 위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2008년도 하반기에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중도실용을 국정 운영의 주요 기조로 천명했다. 다시 한번 친서민정책이 국정 운영의 핵심 정책이라는 점을 밝힌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이어 "이제부터 정부 임기 말까지 추진되는 친서민정책은 경제 회복이 어려운 서민들의 일자리와 생활복지,의료 향상으로 바로 연결되고 가시적인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데 정책의 방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와 만나 "이 상태로 가면 여당이 살 길이 있겠는가. 서민들이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다"며 "지방선거 결과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리라는 강력한 주문"이라고 강조했다. 홍 최고위원은 전날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서민정책을 집행하지 않는 정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문책하겠다"고 밝혔고,친박(친박근혜)계인 서병수 최고위원도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기업 등에 간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을 실었다. 특히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번 개각에서 친서민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천할 적임자를 중용해 달라고 이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혁/홍영식/박신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