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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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문제를 제기한 배경과 방식을 보면 예측 가능한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으로 대-중기 대립구도가 형성되자 청와대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대기업 옥죄기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대기업들은 압박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이 대통령의 평소 철학이라고도 했지만,그게 맞다면 왜 대선공약 단계나 정권 초기에 구체화해 제시하지 못했던 것인지 묻고 싶다. 무조건 대기업을 때리던 지난 정부의 포퓰리즘과 달리 이번엔 대-중기 상생을 도모하는 취지라고 말하는 것도, 솔직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중기 상생 법률을 만들고 정례적인 청와대 보고회를 열었던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특히 그렇다.
현실 인식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유영역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국내기업과 외국기업 영역도 구분되지 않은 글로벌 시대에 그런 주장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대기업더러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들라고 다그치는 것도, 대기업 문제 이전에 기업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호도할 수 있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얘기다. 또 대기업이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도 투자를 안해 서민들이 힘들다고 하는 것 역시, 너무나 정치적인 진단이 아닐 수 없다. 불확실한 투자환경에서 현금보유 선호는 비단 국내기업만의 현상이 아닌 까닭이다.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어쨌든 정치적으로 곤란할 때 대기업을 때리는 일이 반복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시장경제를 하는 국가로서는 심각한 위협이다. 불특정 다수를 의식해 특정한 소수를 공격하는 것이 정치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안다면 대기업에 책임을 다 덮어씌우기 전에 정부는 먼저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했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 각 부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문제점도, 답도 이미 다 나와 있다는 반응이다. 하도급 단가 인하만 해도 그렇다. 합리성과 공정성 강화가 핵심이고 보면 정부는 그동안 불법적 행위나 불공정 거래 해결을 위해 얼마나 발벗고 나섰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시장경제를 지키는 경쟁당국 공무원들이 기회만 오면 대기업과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에 자신의 이해관계부터 살피는 건 아닌지도 물론 포함해서다.
중소기업이 어려운 이유 중에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압력 탓도 있지만 글로벌화, 중국의 등장 등 외부적인 요인도 분명히 있다. 고통스럽지만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구조조정을 통해 강한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소기업 범위를 넓히기에 바빴고, 선심성 정책으로 일관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산업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산업생태계 전략도 새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압축성장의 산물인 지금의 산업구조 에서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고 조급해 하지 말고, 10년 후를 내다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비전을 짜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법과 원칙, 시장경제 논리, 그리고 새로운 산업비전을 바탕으로 대-중기 문제를 풀어가는 게 정도이고, 또 그게 근본 해법이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현실 인식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유영역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국내기업과 외국기업 영역도 구분되지 않은 글로벌 시대에 그런 주장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대기업더러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들라고 다그치는 것도, 대기업 문제 이전에 기업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호도할 수 있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얘기다. 또 대기업이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도 투자를 안해 서민들이 힘들다고 하는 것 역시, 너무나 정치적인 진단이 아닐 수 없다. 불확실한 투자환경에서 현금보유 선호는 비단 국내기업만의 현상이 아닌 까닭이다.
청와대는 부인하지만, 어쨌든 정치적으로 곤란할 때 대기업을 때리는 일이 반복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시장경제를 하는 국가로서는 심각한 위협이다. 불특정 다수를 의식해 특정한 소수를 공격하는 것이 정치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 안다면 대기업에 책임을 다 덮어씌우기 전에 정부는 먼저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했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 각 부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문제점도, 답도 이미 다 나와 있다는 반응이다. 하도급 단가 인하만 해도 그렇다. 합리성과 공정성 강화가 핵심이고 보면 정부는 그동안 불법적 행위나 불공정 거래 해결을 위해 얼마나 발벗고 나섰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시장경제를 지키는 경쟁당국 공무원들이 기회만 오면 대기업과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에 자신의 이해관계부터 살피는 건 아닌지도 물론 포함해서다.
중소기업이 어려운 이유 중에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압력 탓도 있지만 글로벌화, 중국의 등장 등 외부적인 요인도 분명히 있다. 고통스럽지만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은 구조조정을 통해 강한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소기업 범위를 넓히기에 바빴고, 선심성 정책으로 일관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산업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산업생태계 전략도 새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압축성장의 산물인 지금의 산업구조 에서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고 조급해 하지 말고, 10년 후를 내다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비전을 짜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법과 원칙, 시장경제 논리, 그리고 새로운 산업비전을 바탕으로 대-중기 문제를 풀어가는 게 정도이고, 또 그게 근본 해법이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