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ART] 롯폰기 달구는 빛의 마술…고흐·고갱·세잔에 눈이 부시다
'나는 종교에 대해 처절한 욕구를 갖고 있다. 그런 밤이면 나는 별을 그리러 밖으로 나간다.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이같이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밤 풍경을 선율처럼 화폭에 담아낸 작가다. 1890년 작 '별이 빛나는 밤의 론강'은 무한한 우주의 신비와 격동을 드러낸 묵시론적인 그림이다. 침묵이 물든 밤에 하늘은 마력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대지 위로 거대한 촉수를 펼치는데 그 어떤 무질서함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여인의 황홀한 속삭임은 또다른 미감을 덧칠한다.

고흐를 비롯해 폴 세잔,폴 고갱,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쇠라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대표작을 모은 대규모 전시회가 일본 도쿄 중심가 롯폰기의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내달 16일까지 이어지는 '후기 인상주의 미술'전이다.

인상주의 미술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소장품 115점이 저마다 색깔을 발하며 전시장을 수놓고 있는 이번 전시에는 '인상파'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 일본인들답게 나이 지긋한 노년층부터 젊은층까지 관람객이 연일 줄을 잇고 있다.

이번 전시는 '1886년-최후의 인상파'를 비롯해 '쇠라와 신인상주의''세잔과 세자니즘''툴루즈 로트렉''고흐와 세잔' 등 10개 섹션으로 나눠진 전시장을 따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론강',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로트렉의 '화장' 등 유명 화가들의 대표작을 보며 미술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미술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인상주의(인상파)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대 예술운동의 한 갈래다. 미술 비평가 루이 르로아가 클로드 모네의 1872년 작 '인상,해돋이'를 보고 비아냥거리며 붙여준 말에서 유래됐다.

인상주의 미술의 특징은 빛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자연을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1880년대 후반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차츰 개성적인 방향을 모색함으로써 인상주의 화풍을 수정하려는 경향이 인상파 내부에서 나타났다. 세잔을 비롯해 고흐,고갱,로트렉,쇠라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후기 인상주의다.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의 '유효 기간'이 끝나갈 무렵인 1880년대 후반부터 1890년대에 등장한 세잔,고갱,고흐,쇠라 등 혁신적인 화가들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지금까지 인상파의 대척점에 서서 20세기 아방가르드 회화를 잉태한 화가들로 규정된 신(新)인상주의를 새롭게 평가하려고 시도한다.

후기 인상주의는 새로운 미술의 단초로 단순하게 보고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풍요로운 것이 사실이다. 단지 가교가 아닌 시대적 · 문화적 보고인 19세기 말 파리의 다양한 예술적 흐름을 반영하며 서로 합쳐지고 나눠지면서 20세기를 향해 달려왔기 때문이다.

후기 인상주의 이후의 미술이 어떻게 현대미술의 단초를 제공한 표현주의나 야수파 화가들에게까지 이어졌는가 하는 흐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는 철저한 조사연구와 탄탄한 기획,그리고 전시효과를 극대화한 전시 공학적 기법으로 오르세미술관을 직접 방문한다 해도 볼 수 없을 만큼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특별전'이다.

산란하는 빛의 향연이 인상주의였다면 후기 인상주의 작품들은 자연의 빛과 색채보다는 그리는 사람의 감정과 눈을 중시했던 시대의 그림들이다. 이렇게 인간은 자연을 대신해서 그림의 주체가 되었고,이런 변화는 현대미술의 씨앗을 잉태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전시는 이런 과정을 가감 없이 매우 친절하게, 실증적으로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작가들의 면면을 봐도 어떻게 새롭게 근대기를 맞고 보냈는지를 알 수 있다. 몇몇 작가의 이름과 단편적인 미술사조만 외운 채 근대미술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관객들에게 이번 전시는 충격이다.

정준모 미술평론가(국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