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위기가 오는 것도 모르고 국가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재계를 대변하는 전경련이 공식 석상에서 정부를 정면 비판한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전경련은 28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2010 제주 하계포럼' 개회사를 통해 정부와 정치권의 난맥상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정병철 부회장이 대신 읽은 개회 발언을 통해 "나라가 올바르게 나아가려면 먼저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국정 실패의 대표적인 예로 '4대강'과 '세종시'를 들었다.

그는 "세종시는 당리당략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4대강 사업도 반대 세력의 여론몰이로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천안함 침몰 등 국가 안보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국가적 위기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를 모토로 내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일이 없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주요 부처 장관,여당인 한나라당에서 "대기업들이 일자리 창출과 투자,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재계와 정부 관계가 불편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세종시 이전,미소금융재단 설립 등 주요 정부 정책에 협조했음에도 불구,양극화의 책임을 대기업에 돌리고 있는 분위기에 대해 섭섭함을 표출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 회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대한민국의 근본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관을 굳건히 해야 한다"며 "50년을 내다보는 미래 비전과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데도 힘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경련은 이날 개회사와 관련,조 회장이 재계를 대표해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발언 수위를 감안할 때 직 · 간접 경로를 통해 대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 회장은 현재 와병 중이며 이달 초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제주=김현예/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