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삼성전자가 5조원이라는 사상 최고이익을 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이를 보고 삼성전자가 더불어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28일 고려대 조찬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시가총액 100대 그룹도 지난 5년간 1.5%밖에 일자리를 늘리지 못했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대기업이 서민경제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강연 요지다.

글로벌 휴대폰 업계 1위 노키아는 지난 22일 2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스마트폰 싸움에서 애플 아이폰에 밀리면서 실적이 쪼그라들었다. 2007년 15.6%에 달했던 노키아의 영업 이익률은 지난해 2.9%까지 곤두박질쳤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지도가 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잘나가는 대기업도 방심할 수 없으며 남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경련의 이례적인 정부비판 왜?

전경련이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2010 제주 하계포럼'에서 정부를 정면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미래 먹을거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장기 비전을 수립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만 고민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3월 말 이건희 삼성 회장이 경영복귀 일성으로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경련이 이명박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전경련은 재계와 정부가 방법론의 차이는 있지만 지향점이 같다고 판단,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왔다.

지난해 7월 조석래 전경련 회장의 하계포럼 개회사를 살펴보면 재계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조 회장은 "일찍부터 과감하게 경기부양책을 추진해 글로벌 경제 위기를 큰 피해 없이 넘겼다"며 정부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다. 비난의 화살은 철저하게 정치권으로만 돌렸다. "국회가 제 할일을 안하고 싸움만 한다","정치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등이 당시 조 회장의 주요 발언이었다.

◆"급변한 정부 태도 섭섭해"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 정부에 느끼는 감정을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로 요약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일자리 만들기,투자 확대,세종시 투자,미소금융재단 설립 등 정부 주요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음에도 불구,돌아온 것은 비난뿐"이라며 "전경련이 이례적으로 정부를 비판한 배경에는 섭섭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LG전자 등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는 주요 대기업들이 금융위기 돌파의 주역임에도 협력사 쥐어짜기,이익독식 논란에 내몰리고 있는 것도 안타까워했다.

재계는 현 정부의 주요 정책에 적극적으로 화답해 왔다. 전경련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와 일자리 문제가 불거진 올해 초 회장단 회의를 통해 지난해보다 16%의 투자와 8%의 고용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신사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300만 일자리 창출 위원회'도 조직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세종시 이전 논란 과정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삼성 한화 롯데 등 4개 그룹은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육성한다는 정부 약속을 믿고 세종시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을 세웠다가 미래 사업 투자 시기를 놓쳤다.

수면 위로 떠오른 '중소기업 상생'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게 대기업들의 설명이다.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협력업체들이 부담을 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경영이 나아지면서 순차적으로 거래조건을 개선해 왔다는 얘기다. 정부와 청와대가 대기업 실적개선은 2~3차 협력업체에 돌아갈 몫을 독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자 현대 · 기아차,포스코 등은 2~3차 협력업체에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상생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검찰,국세청 등을 동원,동시다발적으로 대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듯하다"며 "재계와 정부가 현 정부 출범 초기와 같은 협력관계로 돌아갈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