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달라붙은 여인의 등,미국 건축가 리처드 세라의 근엄한 표정,헤어스타일링 대회에 출전한 모델의 화려한 머리,말레네 디트리히 인형을 안고 있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풍만한 가슴….

현대 사진예술을 대표하는 토마스 루프 등 독일 사진 작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원도 영월군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강국제사진제에는 루프를 비롯해 티나 바라,발터 베르그모저,졸탄 요카이,바바라 클렘,헬린데 쾰블,에라스무스 쉬뢰터,헬무트 뉴튼,스테판 모제스,카리나 링에,잉가 클라우스 등 11명의 오리지널 프린트 100여점이 걸렸다.

독일 바우하우스대 명예교수 카이 우베 시에르츠가 기획한 이번 사진전의 주제는 '내 영혼의 휴식'.동강 일대 피서지에서 바캉스를 즐기며 독일 작가들의 다양한 얼굴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얼굴에 담긴 다양한 표정들에는 신선한 미감이 녹아 있다. 토마스 루프는 2m가 넘는 초대형 얼굴 사진을 출품했다. '엘케 덴다의 초상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여성의 흉상을 정면에서 포착했다. 배경을 밝은 회색으로 꾸며 인간의 원초적인 색감을 담아낸데다 피부의 땀구멍을 확대경처럼 보여줘 이채롭다. 정사각형 인화지를 사용해 직사각형 사진보다 훨씬 강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패션 사진 작가 헬무트 뉴튼의 작품도 8점이나 있다. 앤디 워홀,나스타샤 킨스키 등 유명인들의 신체를 통해 인간의 관음증과 노출증을 드러낸 작품들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워홀의 눈빛이 강렬하다.

17~20세 소녀들의 내면을 렌즈로 포착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티나 바라의 '마투라'(고교 인증시험)는 시험이 끝난 청소년들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자기 발견과 의사 결정 과정의 복잡한 심리를 리얼하게 잡아낸 작품이다.

인물 초상화 작업에 예술인생을 바친 요카이는 소외된 인간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고독과 생소함을 시각화한 '기억하기'는 공터와 길가,광장,공원 등을 배경으로 촬영한 것.사회적으로 깨지기 쉬운 공간의 '사이'(유년과 성년 사이,익숙함과 낯섦 사이 등)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오브제와 텍스트를 사진과 결합한 카리나 링에,오랜 시간을 두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권력자의 변화를 추적한 헬린데 쾰블 등의 작품에서 독일 사진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전시는 9월26일까지 이어진다.

영월학생체육관의 '동강사진상 수상자전'에서는 올해 동강사진상을 받은 강용석씨가 분단과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내달 23일까지 선보인다. (033)370-222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