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한 한국인들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세계은행 기준)은 2007년에야 2만달러 고지에 가까스로 올랐다가 이듬해 1만9231달러로 다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 성장률이 둔화된 데다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국내적으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편가르기 싸움으로 허송세월했다. 결국 우리는 15년째 선진국의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셈이다.
1989년부터 5년간 활동했던 제1기 대통령자문 21세기 위원회 위원들이 1995년 결성한 사단법인 21세기모임은 《20년 전 전망과 20년 후 미래 설계》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이 책은 약 20년 전 내놨던 국가발전 비전과 전략을 오늘의 시점에서 평가하고 지금으로부터 20년 후 바람직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21세기모임에 참여한 40여명의 면면은 화려하다. 류우익 주중대사,김영무 김&장 법률사무소 대표,김한중 연세대 총장,이원덕 삼성경제연구소 상근고문 등 한국을 이끄는 리더들이다. 이들 중 일부가 사회 문화 교육 경제 과학기술 환경 노동 정치외교 등의 분야로 구분해 글을 썼다.
경제 부문을 맡은 장현준 카이스트 교수는 기존의 성장 모델로는 한국 경제가 더 이상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룰 수 없으므로 혁신적인 성장 모델을 만들어 내야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말한다. 녹색 성장은 혁신 모델의 대표격이다. 교토의정서에 따라 지구촌은 앞으로 탄소 배출이 적은 에너지 구조로 바꿔야만 한다. 자동차에 쓰이는 가솔린 연료는 연료전지 등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태양열 · 조력 · 바이오매스 · 풍력 · 지열 등 신재생 에너지들도 화석연료를 교체해갈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포스코 삼성 현대 LG 등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산업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원천기술을 갖지 못했다. 녹색 성장 외에 금융과 문화,서비스 산업에서 혁신적인 성장 모델을 이끌어 낸다면 2006년 골드만삭스가 제시했던 2025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2조6000억달러,1인당 GDP 5만달러의 장밋빛 미래를 실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학기술 부문에서는 20년 전 내놨던 전망이 대부분 현실화됐지만 인터넷 발달 속도,휴대폰과 생명과학의 발전,사회적 영향력,생명복제의 부작용과 윤리적 문제 등에 관한 연구는 부족했다고 평가한다. 20년 뒤를 위해서는 응용개발 연구에서 원천기술 연구로 전환하는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분석한다. 생활문화 부문에서는 가족 구조가 바뀌고 풍요추구형 소비행태로 변화했으며 앞으로 창의성과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하는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